이게 바로 누와르!
나서영 지음 / 심심 / 2012년 4월
평점 :
품절


누와르는 프랑스어로 검다는 뜻이란다. 하지만 누와르, 느와르 라고 하면 예술 영화 내지는 홍콩 영화들이 떠올려지는데 그들을 예로 들어 설명했던 예술가들 때문에 머릿속에 인이 박혀 버려 그런가보다 했다. 하지만 초록색 표지의 책한 권을 읽으면서 나는 또 다른 누와르와 만나게 되었다. 기존의 생각들을 날려버릴만큼 통쾌하고 재미난 소설 한 권.

 

 

[이게 바로 누와르]는 상상하지도 않았던 재미를 가져다준 소설이다. 하지만 그 재미 안에서는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가 작지만 고스란히 담겨 있어 마냥 웃으며 읽게 만들지는 않는다. 심각하게 고민하고 문제의식을 갖게 만들지는 않지만 웃고 떠드는 속에서 풍자의 맛이 느껴지는 개그프로그램을 보듯 [이게 바로 누와르]는 그렇게 읽혀진다.

 

인구 6만의 도시 용주군. 광역시 급 큰 도시는 아니지만 용주군은 그들만의 룰으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너비의 지역이었고 이 중심가엔 3F짜리 건물인 혜영빌딩이 있다.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면서 지역사회의 중심이 되었던 그들은 어느날 굴러온 돌에 박힌돌이 움직여지듯 한 일을 당하게 된다. 애초부터 6명의 남자로 구성된 친목단체였던 이들은 벤츠를 몰며 들어온 심씨형제에 대항해 지역을 지켜내려는 이들로 변모하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발전이 좋은 것인지 지켜내는 것이 좋은 것인지에 대해 각각 찬반의 의견을 갖게 되는 것이다. 소설을 읽으며 찬반론의 결론 도출을 내어보기도 처음이라 읽는 내내 즐거웠고 단편 드라마를 보듯 펼쳐지는 전개에 정신없이 휘말리기도 했다.

 

누와르에 대한 느낌이나 정의가 어찌됐든 간에 이야기는 한 작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형제와 친목단체간의 반목을 넘어서 힘과 권력의 맛을 잘 살려내고 있었다. 누와르하면 떠올려지던 몇몇 배경음악들이 책을 읽는 내내 귓가를 맴돌았지만 어느 것도 이 이야기와 어울리지는 않았고, 누와르가 가진 미학적 잔혹성이나 미장센적 장면들을 추려보긴했지만 영상화 했을때엔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이야기는 누와르라는 제목과 참 잘 어울렸다. 서로의 이권을 두고 다투는 형국이긴하지만 그 속에는 그들나름의 정의가 있고 당의가 있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의 사회가 담겨 있어 현실을 직시하게 되는 효과까지 소설을 읽으며 누릴 수 있어 독자에겐 일석이조가 되는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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