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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파란 - 제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금상 수상작 ㅣ 황금펜 클럽 Goldpen Club Novel
류서재 지음 / 청어람 / 201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내 기억 속 흥선대원군은 키가 작고 꼬장꼬장해 보이는 늙은 할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언제나 사극에서 보여지는 흥선대원군의 모습 그대로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며느리인 민비와는 앙숙지간이었으며 쇄국정책으로 여러나라와의 교류를 막아섰으며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소신을 지키는 쪽을 선택한 인물이었다.
고집스럽고 답답한 할아버지의 이미지가 가득했던 흥선대원군이 실은 예술가로서의 재능이 충만했고 서화에 가야금까지 능했던 멋스런 인물로 탈바꿈 된 데는 제 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금상을 수상한 [석파란]이라는 소설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석파란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호다. 중국인들이 탐낼만큼 그림에 일각연이 있었던 이하응이 아들을 궁으로 들여보내고 정치권력의 중심에 서기까지 권력가들과 얽히고 섥히는 이야기가 바로 소설 [석파란]인데, 그 안에는 김옥균도 있고 어린 자영도 있으며 조대비와 천주교도들의 이야기도 함께 엮여 역사의 큰 물줄기를 훑어내렸다. 그저 젊은 흥선대원군에만 포커스를 맞춘 소설이 아니어서 더 흥미롭고 재미난 그의 이야기 속에는 아비로서,국구로서의 대원군 이미지보다는 예술가로서, 삶을 살아내는 사내로서의 남자 이야기가 가득해 기존의 이미지를 털고 읽게 만든다.
그에 비해 고종이 형 재면을 제치고 왕이 되는 이야기는 뒷부분에 약간만 덧붙여진듯 축약되어 있어 아쉽기만하다. 아마 포커스가 흥선대원군에 맞춰져 있어 그런가보다. 그간 명성왕후와 대원군의 대결구도를 다룬 소설과는 다른 차이점이면서 풍류아로서 살아온 삶을 보여주려 함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예술가로 이해된 이하응은 답답한 영감님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취화선의 화가처럼 화폭에 담은 그림외엔 엉망으로 취해사는 삶을 산 것도 아니었고 예술혼을 불태우기 위해 평범한 삶을 거부한 인사도 아니었다. 그의 그림이 주는 심플하면서도 멋드러진 모습마냥 그는 균형과 절제를 아는 인물이었고 추사의 "대가"라는 칭찬을 받을만큼 재능이 넘쳐흘렀던 선비였다. 그런 그가 "묵란화"로 조대비와 연결되면서 그 뜻을 펼칠 다리를 얻게 되고 왕의 아비가 되어 실세로 등극했다.
왕을 하늘이 낸다면 왕의 아비의 운명도 하늘이 정해놓은 것은 아닐까. 이제껏 역사 속에서 왕보다 더 많은 조명을 받았던 왕의 아비는 대원군뿐일 것이다. 그의 카리스마와 드라마틱한 인생이 작가들을 자극해댄 탓일까. 섭정을 맡기 전 그의 삶과 극명히 대비되는 이후의 삶에 대한 매력때문일까. 대원군에 대한 창작물은 앞으로도 멈출 것 같지 않다. 하지만 이보다 매력적인 대원군의 삶을 또 만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