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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에버트 - 어둠 속에서 빛을 보다
로저 에버트 지음, 윤철희 옮김 / 연암서가 / 2012년 4월
평점 :
책 한 권으로 한 사람의 일생을 모두 알게 되었다고 말할 순 없다. 더군다나 그가 잘 알던 인물도 아니고 그에 대해 들은 말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67년부터 [시카고 선타임스]에서 영화리뷰를 해온 로저 에버트는 미국에서 유명한 영화 평론가라지만 그는 내게 낯선 이방인이었다.
얼핏보면 영화배우 존 보이트 필이 나는 겉표지의 책이 도착했을때 나는 의아스러워졌다. 얼마나 유명한 인물이길래 책은 이토록 두꺼운 것이며 그가 이토록 유명인이라는데 나는 왜 그의 이름을 이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일까 하고. 그래서 더 꼼꼼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빨리 읽기보다는 매일 조금씩 정해진 양을 읽어나가기로 결심하곤 욕심을 버리고 그를 알아나가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는 정말 뚱뚱했다. 두꺼운 검은 뿔테 안경을 낀 그의 과거 모습에서 47kg이나 빠진 60대의 모습을 비교해보곤 어느 쪽이 더 낫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전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살게 된 그가 병으로 모든 것을 잃었을때 느꼈을 좌절감은 47kg에 비할 바가 아님은 안다. 부부의 늦둥이 아들로 태어났지만 아버지가 폐암으로 돌아가셨듯 그 역시 침샘암으로 고생한 걸 보면 암은 그의 집안 가족력인듯 하다. 얼굴이 많이 망가지고 살도 많이 빠졌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일은 자신을 찾아가는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는 평생의 동반자인 부인 채즈로 인해 망설일 시간도 없이 산책을 하고, 러닝머신을 걷는 등 재활활동에 박차를 가할 수 밖에 없었다. 그가 결혼할때 흑인과 결혼한다고 부끄러워했던 지인들을 뒤로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밀어부쳤던 선택이 올발랐음을 삶으로 증명한 셈이었다.
그의 인생을 계속 흘러가도록 만들어주는 그녀는 수술 후 입으로는 음식을 먹지 못하던 순간에도 자신을 놓지 않도록 그의 곁을 지키며 남편을 삶 속에 붙들어 두었다. 그 결과 말하는 능력을 상실한 후에도 아내의 책읽는 소리를 들으며 병과 사투를 벌였다. 자신의 얼굴을 받아들이고 죽음이 가까이 왔음을 깨닫고 있지만 그래도 마지막 장에 이르기까지 평온함을 보여주고 있는 노평론가의 삶은 지루하지 않고 담백했다 오프라 윈프리와 친한 사이여서가 아니라 여러 영화 관계자들과 잘 알고 지냈던 사이여서가 아니라 그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반대로 나는 인간 로저 에버트에 대해 더 집중할 수가 있었다.
보통의 글들은 그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부터 판단하게 만드는데 반해 스스로가 저자로 올려져 있는 [로저 에버트]는 누군가의 일생을 무성영화로 나 홀로 극장에 앉아 보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서게 만들고 그가 어떤 사람이건 무엇을 한 사람이건 간에 그저 한 사람의 처음과 중간 그리고 끝을 구경하며 나 역시 저런 순서로 늙어가고 있겠지 라는 삶의 흐름을 깨닫게 만들기도 했다. 그 옛날 스핑크스의 질문에 대한 답이 인간의 삶, 즉 인생이었던 것처럼 사람은 누군가 태어남 뒤엔 죽음을 향해 네 발로, 두발로 세발로 살아가다 사라지는 존재임을 받아들이게 만든다.
이 책은 그가 얼마나 유명한 사람인지 자랑해 놓은 책이 아니다. 그가 병마와 치열하게 싸워 이긴 치유서도 아니다. 그저 영화 평론가였던 한 인간이, 글을 쉽게 쓰려 애쓴 한 평론가가가, 수식어로 독자를 현혹시키진 않았지만 날카로운 시선과 통찰력으로 독자를 사로잡았던 한 글쟁이로 기억된 사람에 관한 책이다. 역자가 붙여놓은 그에 대한 한 줄처럼 나 역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우연한 기회로 운명은 그를 영화평론가의 길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것들은 그가 열심히 이룩한 것들이었다. 인생에 있어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었다. 그리고 시련이 없을 수도 없었다. 다만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후의 삶을 살아가느냐가 관건일텐데 로저 에버트는 이 책을 집필할 것 만으로도 후의 삶을 잘 조율해 나가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어 존경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