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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의 무대는 어디입니까? - '윤하정의 공연세상' 무대 위 20인과의 진솔한 이야기
윤하정 지음 / 끌리는책 / 2012년 4월
평점 :
44. 스텍이 화려하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이 많아진다
애초에 예술감독 박칼린과 뮤지컬 배우 류정한의 인터뷰가 있다고 해서 이 책의 내용을 탐냈었다. 워낙 뮤지컬을 좋아하고 어린시절부터 봐왔던터라 내게 뮤지컬은 TV보다 가까운 친구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많은 배우들의 이름을 줄줄 꿰게 되었고 그 관계자 역시 눈여겨 보게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박칼린 감독도 그러한 경우였다. 남자의 자격에 나오기 전부터 나는 그녀에게 관심이 많았다. 다문화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그녀는 양국의 좋은 점을 양분으로 해서 자란 가장 성공적인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동서양의 음악을 두루 섭렵하며 그녀는 한국에서, 세계 속으로 그 좋은 면들을 부각시키며 성장해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가 자꾸만 눈에 띄였다.
그리고 오페라의 유령을 통해 알게 된 배우 류정한은 그 목소리에 홀딱 반해 좋아하게 된 배우인데, 그는 딱 그 배역의 그 사람이었다. 하지만 책은 그들 외의 다른 사람들 또한 빛나보이게 만들고 있었으니 그중 첫번째 인물이 바로 미술해설가 윤운중이다. 단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이름이었는데 그의 이력이 남다르고 그가 걸어온 길이 남다르고 그가 앞으로 해나갈 일들이 남달라 눈이 즐겁고 뇌가 즐거워졌다. 상상만으로도 뇌가 즐거워질 수 있다는 것. 나는 가끔 이렇게 뇌가 즐거워진다.
먼저 그는 공고출신이다. 삼성전자 연구소에서 퇴사하면서 정규교육 없이 발로 뛰며 얻어낸 미술 지식들로 아르츠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미술작품과 연관 음악들을 안내하기도 했다. 마치 미술계의 유홍준 교수님같은 느낌이랄까. 언젠가 그의 설명을 통해 그림들을 볼 날이 있을까. 외워 들려주는 이야기가 아닌 그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상상만으로도 귀는 벌써 즐겁다. 스펙이 화려하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기회와 가능성은 분명 많아진다. 하지만 스펙 없이도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열정만 있다면 분명 하늘은 하고자 하는 이의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그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 물론 그 길이 직선이 아니라 굽이굽이 돌아가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그 외에도 매력적인 인물은 참 많았다. 완전동안인 [김종욱 찾기]의 연출가 장유정, 처참히 죽거나 미쳤거나 주로 강한 역을 맡아온 연극배우 장영남,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를 통해 그 연기력을 입증한 바 있는 뮤지컬 배우 정성화, [김종욱찾기]의 22인 멀티맨출신 임기홍, 배우 오달수나 유명해진 그 여자 차지연에 이르기까지 무대 위에서 빛나는 그들은 무대를 옮겨 다른 무대 위에서도 멋지긴 마찬가지였다. 뿐만 아니라 그들보다 더 오래 그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주는 묵직한 감동 또한 보태져 있다. 30년, 49년을 무대 위에서 살아온 배우 김성녀, 박정자 씨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국민배우들인데 여전히 즐겁게 무대를 즐기고 있어 그 뒤를 따르는 후배들을 숙연하게 만들고 있다.
P113 네가 지금 힘든 것은 가고자 하는 길에 가장 가깝게 있기 때문이다. 이 고비만 넘기면 뭔가 잘 되려나 보다
잘되는 사람에게 하는 응원은 칭찬이다. 하지만 고뇌하는 사람에게 하는 응원은 용기가 되고 믿음이 된다. 이들의 오늘은 그 용기와 믿음을 실어준 곁 사람들이 있어 함께 만들어 낸 것은 아닐까. 배우 김수용의 어머니가 남긴 그 말이 가슴에 와 닿으면서 오늘도 내게 같은 응원을 실어주고 있는 내 친구에게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 싶어 몇 자 메모해 둔다. 기자 윤하정이 만난 무대 위 20인의 인터뷰는 무대 위 사람들을 가장 잘 이해하게 만들면서도 그 길이가 짧아 좀 아쉽다는 느낌을 남긴다. 아, 조금만 길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마치 맛있는 음식을 먹고 한 숟가락 더 먹고 싶다는 마음이랄까.
무대가 정해진 그들과 달리 우리의 무대는 언제나 변덕적이다. 지금, 우리의 무대는 어디일까? 무대 위에서 우리는 이들만큼이나 열정적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어제는 그들의 무대를 구경했다면 오늘은 나의 무대를 눈여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