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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 전아리 장편소설
전아리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2월
평점 :
작가 전아리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 처음 그녀의 글을 접했을 때엔 그녀의 기량을 잘 몰라보고 그저 스쳐지나쳤다. 친한 친구가 그녀의 수상 경력과 [직녀의 일기장]이 꽤 괜찮은 글이라고 추천했으나 추리소설에 한참 빠져 지내던 내게 그녀의 글은 그냥 심심한 글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복잡한 구조, 탄탄한 사건파일이 후반에서 뒤집히며 독자를 놀래키는 반전 등에 빠져지낸 나머지 다른 글들은 그저 밋밋하게 느껴졌던 시절이었다.
이후 [구슬똥을 누는 사나이]를 읽으며 그녀에게 다시 관심을 가졌다가 여러 작가들의 모음글 속에서 그녀가 쓴 무당엄마를 둔 자녀의 이야기가 드라마의 단막극처럼 읽혀져 그간을 필체와 다른 그녀의 글에 놀라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는 뮤지컬로 재미있게 보았던 [김종욱 찾기]에 이어 [앤]으로 다시 내 앞에 나타났다.
앤. 빨강머리 앤 이후 모든 앤들은 왠지 빨강머리일것 같고 빼빼 말랐을 것 같고 주근깨가 있어야 짝퉁이 아닐 것 같이 강한 캐릭터 브랜드로 굳혀진 지금 그녀는 "앤"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흥미로운 소설을 완성해냈다. 그녀의 앤은 과거의 이름이자 현재의 족쇄였으며 다잉메시지가 되어 동창들의 생명줄을 잡고 있는 존재였다.
"앤"이라 불리던 희진이 죽은 건 사실 계획되었던 일이 아니었다. 그저 친구의 고백을 무참히 거절한 소녀에 대한 10대 소년들의 장난같은 복수가 불러온 과실치사였을 뿐인데, 그 일로 인해 기완은 옥살이를 하고 나머지 넷은 똘똘 뭉쳐 서로의 보호막이 된다. 알리바이가 성립된 넷이 성인이 되었을때 기완은 그들 앞에 다시 나타나지만 이미 예전에 그 친구가 아니었고 기완의 죽음 이후 모두가 공범이었던 그들은 이제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도 없는 상태가 되어 "앤"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묶이게 된다는 이야기가 바로 소설 [앤]의 줄거리다.
비밀과 폭로, 사실과 거짓, 우정과 배신이 10대라는 질풍노도의 시기와 적절히 뒤섞여 읽는 이를 절정으로 몰아가고 첫페이지를 펴는 순간,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까지 다른 일은 모두 잊게 만들어 버린다. 작가 전아리는 작품을 통해 성장통을 겪으며 전진하고 있다. 그래서 이 작가! 계속 주목하게 된다.
사실 책의 표지를 보면서 보라색은 특권층만을 위한 색이라고 강조하던 광고가 떠올랐는데, 그래서인지 "앤"과 가장 어울리는 색이 바로 보라색인듯 느껴졌다. 보라색과 앤. 나는 이 책을 한동안 색으로 기억할 것 같다. 줄거리나 결말이 아닌 보라색으로 기억될 책은 [앤]이 처음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