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이보다 더 충격적이고 슬픈 제목의 책이 또 있을까. [나는 더 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다]라니. 어른들이 툭툭 던지듯 말하던 "어느 집이나 문제 없는 가정은 없고, 한 명 정도는 문제적인 가족이 있기 마련이다"라며 입닫길 종용해왔던 일들에 대해 파헤치고 든 이 책의 용기에 나는 먼저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가족과 마주서서 행복할 권리를 행사해야만 하는 건 아침드라마 [태양의 신부]에 등장하는 효원이에게만 해당되는 사항이 아니다. 그 드라마 속에서 너무나 착한 딸이고 너무나 착한 후처로 등장해 오히려 사랑하는 이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그녀의 "착한 아이 컴플렉스"에 속이 뒤집어지는 한 시청자로써 가정내에서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그 답답한 상황에서 벗어나라고 말해주고 싶어진다.
서른이 넘은 자식에게 시도때도 없이 전화해서 일거수 일투족을 확인하거나 진로,여행계획,남자친구 문제까지도 개입하면서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라는 엄마들은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긴 했다. 세상이 워낙 흉흉하니 그렇다는데 뭐라 딱히 대꾸할 말도 없는 딸들은 답답하기만 할 것이다. 또한 다른 형제들은 다 제처두고 딸자식에게만 금전적으로 기대 희생을 요구해 4년제 나와 번듯한 형제들에 비해 몇년째 딸을 가난하게 살게 만드는 아버지나 술만 마시면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붓는 가장, 주인 없는 사이 신혼집을 들락거리며 딸과 사위가 불편해 하는데도 아랑곳 없이 자신의 멋대로 청소하다가 결국 고마움을 모른다며 아이가 생기기 전에 갈라서라고 폭언을 일삼는 친정엄마, 여자친구를 데리고 오면 식당일을 고되게 시켜 헤어지게 만들고선 아들의 사랑이나 서로의 성격이 잘 맞는 것과는 상관없이 지나치게 책임만을 강조해 자신에게 맞는 며느리를 고르려는 엄마 등등 책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었다.
근처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였고, 가까이는 매일 보는 드라마에서 일상적으로 나오는 단골 소재들이었으며 직장내에선 누군가의 입을 통해 하소연으로 들어봄직했던 사연들이 하나씩 끼워져 있다. 심지어는 동생과 언니의 뒷담화를 일삼는 엄마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어린 여동생 몫의 재산까지 가로챈 언니가 고아처럼 자란 동생에게 세월이 흘러 자신을 의탁하러 당당하게 나타나는 경우까지 있다니 세상은 정말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별별 억울한 사연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하지만 비난이 두렵고 화를 낼까 두렵고 혼자가 되는 것이 두렵고 죄를 짓는 것 같아 두려워 그저 침묵해야 하는 쪽은 속이 썩어 문드러지고 있다는 것을 상대방이 알리가 없다. 문제가 없는 가족은 없다지만 가족에게 최선을 다하고자하는 착한 마음을 이용하고 버리고 무시하는 태도 역시 폭력임을 책은 집고 넘어가고 있다. 가족이니까 "괜찮아" 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게 만든다는 점에서 나는 이 책이 최근 읽었던 가족관계 서적 중에서 가장 속시원하게 제 할말을 다하고 있는 책이라고 칭찬해주고 싶어졌다.
가족안에 무언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족간에 분란을 일으킨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쉽게 입을 열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책의 도움을 받아 나를 더욱 힘들게 한 가족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기를 독려해본다. 참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마음의 병이 더 무섭고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리며 사는 것이 더 어리석다.
가족이라면 어떤 이야기도 다 털어놓을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것은 환상이다. 가족이 우리 인생의 목표나 대단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듯 뚜렷한 결과를 제시하면서 가족의 "비난"을 다루는 방법을 알려주며 가족을 놓아야 할 때 를 깨닫게 만드는 까닭은 최선을 다했지만 더이상 자신을 상처입히는 상황에 내버려 두지 않기 위해서다. "떠나있기" 와 "한계설정" ,"무관심하기" , 를 통한 가족과의 거리두기는 견디고 희생하고 그래서 가난해지거나 버려지는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훨씬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선택이된다. 현명하게 대처하라! 결국 책은 우리에게 이 말을 해주기 위해 많은 예시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못난 부분과 잘난 부분을 함께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일이라고 한다.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변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를 변화시키거나 그가 변하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가족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삶을 살아보자. 가족보다 나은 이웃이나 가족보다 더 소중히 여겨주는 친구들에 둘러싸여 있는 동안 자신을 맘껏 사랑해보자. 그러다보면 어느새 건강한 어른이 되어 있는 자신을 비난할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을까.
서양에 비해 오랫동안 가족과 묶여 살아야하는 대한민국에서 시원하게 가족문제를 건드려 곪은 곳을 터뜨리고 소독하는 책들이 더 많이 출판되기를 기대해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속이 다 시원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