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나무의 일기

어느 나무의 일기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 지음, 이재형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1월

[벽을 통과하는 남자]의 각본을 쓴 디디에 반 코뵐라르트의 장편소설 [어느 나무의 일기]는 나무가 화자인 소설이다.
특이하게도 나무는 인간을 관찰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인간이 그들을 무자비하게 쓰러뜨리고 베어버리는 것에
비해 얼마나 관대한 시선인지. 더불어 인간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인간을 바라보고 있어 소설은 한없이 따뜻한
기운을 내뿜으며 독자와 마주한다.

마을에서 "불행을 불러오는 나무", "귀신붙은 나무"로 불리는 트리스탕의 나이는 삼백살 정도 되었다.

그곁에는 또 다른 나무 "이졸드"가 있지만 견우와 직녀 같은 사이가 아니라 서로의 쓰러짐을 묵묵히 바라보는 사이
일뿐이다. 결국 이름 붙인 인간들에 의해서만 애틋한 관계인 트리스탕과 이졸드는 트리스탕이 먼저 쓰러지면서
나란히 하던 관계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삼백년. 그 세월동안 트리스탕은 어떤 인간들을 바라보았을까. 그가 인간에 대해 갖고 있는 호의가 그간 만난 사람들에
의한 것인지 궁금해지기에 그 역사적 뿌리부터 파고들어가보자면 고목은 무려 프랑스 왕정시대로까지 나이테를 거슬러
올라가야 시작점을 만날 수 있게 된다.

루이 15세. 그때 심어져 왕의 사생아들이 어떻게 독살되고 처리되어 갔는지 과정을 모두 알고 있는 존재는 오직 트리스탕뿐.
또한 신부들을 목매달고 마녀들을 불태워죽이고 시인의 자살을 가까이서 목격했으며 누군가는 그에게 붙어 있다 떨어지며
불구자가 되기도 했다. 모든 것을 목격한 트리스탕을 사람들은 그래서 불행을 불러오는 나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나무의 입장에서 되집어 보자면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은 인간에게 있었고 그는 인간 곁을 말없이 서 있었을 뿐인데
이 자연의 주인에게 사람들은 억울한 누명을 씌워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무는 이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한 인간의 글의 힘을 빌어....

태풍이 불고 화재가 일어나고 가뭄이 닥치고 나무꾼의 손에서도 살아남은 오래된 나무가 들려주는 인간의 이야기는
아주 오랫동안 우리네 아이들에게 "옛날옛날 이야기"로 들려줘도 좋을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인생을 담고 있고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나가야할지 결정하게 만들만큼 교훈적이면서 반성적인 소스를 담고 있다.

또한 이야기 사이사이 나무를 너무나 사랑해 지켜왔던 늙은 조르주 란과 나무와 바람을 피우는 불만을 정신분석의에게
털어놓았다가 그녀에게 남편을 빼았긴 란의 전부인, 전처와의 이혼을 부추겨 마음에 담은 남자를 차지하는데 성공한
후처의 이야기도 담겨 있고, 사람들이 자폐아라 진단내린 이웃아이 마농이 나무와 만나면서 그 재능을 찾아가는 이야기도,
트리스탄 없이는 살 수 없었지만 그녀를 구속함으로써 잃어버려야 했던 야니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은 카트린 부셰가 낳은 사생아 둘을 왕이 살해할때 독이 묻은 배를 사용했는데 그들이 죽은
뒤 함께 묻힌 곳에서 시체의 위를 통해 싹을 틔워 자란 저주바은 배나무 두 그루로부터였음을 이야기의 끝에서 저자는
밝히고 있다.

그 배나무 중 하나가 트리스탕이고 또 다른 하나가 이졸드임을 이제 우리는 안다.

프랑스 최고 문학상  공쿠르 상을 수상한 작가의 소설은 독특하면서도 가르치치 않는 필체로 우리의 양심을 뒤흔들고 있는데
이는 인간이기에 느낄 수 있는 것과 우리 역시 자연에서부터 왔기에 느낄 수 있는 것 그 두 가지가 동시에 상성 시너지 효과
를 발휘하며 나무의 가장 기억을 함께 하게 만든다.

가장 아름답지 않았던 인간의 모습도, 가장 소중한 인간과의 추억도 함께 나누면서 나무는 이렇게 우리 곁에 서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도시에서도 가로수를 도시를 벗어나면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자연의 한 자락이 이토록 경이로운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을 예전엔 왜 미쳐 몰랐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