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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황제 - 조선 마지막 황제 순종의 도쿄 방문기
박영규 지음 / 살림 / 2011년 11월
평점 :
[마지막 황제]는 그 드넓은 대국의 왕이 시대의 탁류에 휩쓸려 그 개인의 삶마저 먼지처럼 사라지고만 안타까움이 가득해 나는 그 영화를 수많은 찬사와 달리 바로 보지 못했다. 좋은 영화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 영화를 보면 마음이 쓸쓸해질 것만 같았고 그 영화의 길이가 아무리 길다해도 한 인물이 살아온 그 인생을 다 담기엔 너무 짧은 것 같아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그는 왕이었다. 망국의 왕이었고 망한의 세월을 살다간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한을 가슴에 품고 살다간 이가 있었다. 조선의 마지막 왕족들이 그랬다. 덕혜옹주도, 순종도, 영친왕도, 의친왕의 삶도 순탄하지 못했고 그들은 원하는대로 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역사시간에는 스리슬쩍 지나쳤던 근현대사를 파고들며 그들의 삶을 더 알고자하지 않았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왠지 슬퍼질 것 같아서. 짓밟힌 역사를 되살리는 일은 너무 속상할 것 같아서.
하지만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사는 공부해야하며 알려져야한다는 누군가의 강의를 들으며 생각을 달리하게 되던 순간 찾아온 책과의 인연은 그렇게 묘할 수 밖에 없었다. [길 위의 황제]. 그 길은 인생의 길이기도 했을 것이고, 주어진 삶의 길이기도 했을 것이고, 떠돌아다녔을 그 길이기도 했을 것이다. 제목만으로도 쓸쓸한 그 이야기는 아버지이자 왕이었던 고종이 그에게 남긴 뼈 아픈 당부가 굵직한 중심이 되어 이어진다.
"이기는 자가 살아남는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이기는 것"
16년간 창덕궁에서 머물다 생애를 마친 황제였지만 그는 한번도 황제였던 적이 없던 사람이었고 궁궐에 살았지만 한번도 군림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 아비에게 무한한 사랑을 받은 이였고 어미 민비가 끝까지 지켜낸 아들이기도 했다. 칼보다 강한 것이 세월이라지만 그에게 그 강한 세월은 과연 "약"이었을까, "독"이었을까.
단 한번밖에 살 수 없는 생을 눈과 귀와 입이 자유롭지 못한 가운데서 살아남아야했던 한 남자의 이야기는 그래서 참으로 쓸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