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 측 증인
고이즈미 기미코 지음, 권영주 옮김 / 검은숲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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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여인의 삶을 망가뜨리고 울리는 일은 현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작가의 삶 자체도 52세의 아까운 나이에 사고사로 끝나버린 고이즈미 기미코의 [변호 측 증인]은 사랑을 잃은 여인이 할 수 있는 가장 통쾌한 복수 스토리로 독자를 찾아왔다. 사랑하는 것의 반대는 배신이 아니라 더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 소설은 한 재벌가 총수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야시마 가를 이끌었던 야시마가 살해된 다음 날 아침. 용의자는 모두 가족으로 묶인 사람들이었다. 딸과 아들들 그리고 클럽 댄서 출신의 새 며느리까지. 범인은 이들 중 누구일까? 소년탐정 김전일이라면 "이 중에 범인이 있다!"라고 외치며 한 명, 한 명 혐의를 벗겨가며 범인을 줄여나갔을 것이며, 명탐정 코난 이라면 "바로 당신!"이라고 지목한 다음 그 이유를 말해주겠지만 세이케 요타로는 사형을 언도 받은 초대받지 못한 가족인 미미 로이의 선공판을 뒤집으며 그녀를 극적으로 구해냈다. 그녀가 그토록 감싸주고 싶었던 남편의 혐의조작으로부터-.

 

아내는 남편을 사랑했으나 남편은 아내를 살인자로 만들었다. 단 한 문장으로 축약되었지만 사실 이 문장은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문장이다. 한 사람에겐 계속되는 사랑이 소중했고 다른 한 사람에겐 하룻밤 사이에 버려질만큼 하찮은 무게감을 가진 것이 바로 사랑이었다니. 그들이 부부였다는 사실이 더 서글프게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소설을 읽는 시간은. 내내.

 

문장을 쓰는데, 육하원칙에 맞추어 처음부터 끝까지 똑 떨어지게 시간의 순서에 맞게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사건, 같은 이야기를 두고도 은유법, 도치법 등등을 활용해 문학적 문장으로 써 내려가는 사람이 있다. 감동을 주는 문장은 바르게 쓰여진 문장, 남과 같이 쓰여진 문장이 아니라 의외성을 가진 문장에서 얻어지는 것임을 나는 안다. 다년 간 많은 작가의 소설을 읽어가며 왜 재미있는지. 혹은 왜 재미없는지를 나누어가며 읽다보니 나름의 기준이나 "눈"이 생긴 것 같다.

 

재미있는 책들을 읽을 수 있도록 해주는 존재가 바로 책인데, 이 고마운 존재는 내게 지식 외의 것들을 가져다주며 나를 더 알찬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좋은 친구였다. 고이즈미 기미코의 소설은 처음 접해보았지만 그녀의 기구한 삶과 죽음 외에 소설이 주는 잔잔하게 뒤집는 반전의 묘미도 찬사받아 마땅하다는 생각이 든다. 또 하나의 좋은 작가, 좋은 읽을 거리 외에 좋은 친구를 얻은 것 같아 기쁘기 그지 없는 가운데, 명문장을 뽑아내자면 이 부분이 아닐까 싶다.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라는 표현으로 영원을 맹세케 했는데,

이 죽음이란 대체 누구의 죽음을 의미하는가?

 

우리를 갈라놓은 것은 우리 둘 이외의 사람을 덮친 죽음이었다.

 

라니.그 어떤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도 결혼의 맹세가 두 사람 외의 죽음으로 갈라질 수 있다고 상상해 본 일이 없는 내게 이 두 문장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나를 믿어줄 것 같은 사람은 나를 밀어내고, 누가봐도 내게 호의가 단 한 톨도 없을 것만 같은 사람은 죽어서도 나를 살리다니...! 사람의 속은 열 길 물 속 보다 알 길이 없고 삶은 끝까지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것이라는 교훈이 바로 이 소설 속에 포함되어 있었다.

 

겨울이지만 나는 가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진다. 속이 타는 것도 아니고 유달리 추위를 많이 타지만 가끔은...가끔은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 이 소설을 읽기 전, 나는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소설을 다 읽고나서 맛나게 꺼내먹었다. 마치 재판을 보고 온 사람처럼 시원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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