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인생
제이시 두가드 지음, 이영아 옮김 / 문학사상사 / 201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엠마 도노휴 [룸]을 읽으면서 끓어오르던 분노는 개인을 향한 것이었다. 어린 아이의 시각으로 보여진 과거였기에 끔찍함이 덜해졌는지는 몰라도 결코 동화처럼 미화될 수 없었던 그 만행 앞에 눈물보다는 분노가 치솟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실화를 바탕으로 작가가 쓴 소설이 아닌 그 사실을 겪은 사람이 집필한 내용이라면 어땠을까? [도둑맞은 인생]의 제이시 두가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녀는 11살때 등굣길에 납치되어 18년 간이나 성노예 생활을 하며 14살엔 첫 딸을 다음에도 또 딸을 낳아 두 딸의 엄마로 살다가 스물 아홉이 되던 해에 그 끔찍한 곳을 나올 수 있었다. 읽으면서 내 분노가 어디를 향한 것일까 싶었는데, 개인을 향한 것보다 세상을 향한 분노가 더 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룸]과는 달리.

 

이웃과 단절된 곳이 아닌 버젓이 이웃이 있고 주택가 한 가운데에서 갇혀진 채 살아야했던 제이시. 성에 대해 알기도 전에 세상의 가장 추악한 것을 온 몸으로 겪어내야했던 제이시의 실화는 생각보다 담담했다. 소설이었던 [룸]이 잘 꾸며진 양념 같은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도둑맞은 인생]은 식재료 그 자체인 채로 놓여진 식단처럼 정말 이토록 담담해도 좋을까 싶을 만큼 담담한 어조로 나열되어져 있다. 그래서 더 가슴아팠고 그래서 더 마음에 구멍이 뚫린 것 마냥 바람소리가 숭숭나는 것 같다.

 

사방에 이웃집들이 있었고 보호관찰관들이 납치범인 필립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어째서 그녀와 두 딸의 존재는 18년간이나 감춰져왔던 것일까. 파렴치한 필립은 낸시라는 아내도 있었고 그녀는 요양보호소에서 일했다. 게다가 필립의 어머니까지 있는 가운데 부부는 아이를 납치해와 성노예로 삼았으면서도 죄책감이 전혀 죄책감이 없었다고 했다. 이미 인간이 아닌 그들은 인간의 가죽만 걸친 채 세상 안에 속해 있었고 세상에는 이런 사람들이 아직 누군가의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끔찍했다.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가 18년간 꾸준히 생각해 온 사실이었다고 했다. 만약 아무에게도 구해지지 못한 채 평생을 이렇게 살아가야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하고 싶지도 않은 그 끔찍한 "만약에"를 머릿속에서 치워버리며 그녀의 용감한 한 마디를 기억하기로 했다.

 

나는 나 자신을 피해자로 생각지 않는다. 난 살아남았다.

 

얼마나 용감한 고백인지. 그 누구도 자신의 일을 두고 이렇게 생각할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 너무 힘든 일은 겪어온 그녀가 지나온 과거보다 더 많이 남은 살날 속에서는 그래서 행복한 일들만 만나며 살기를 기도하게 된다. 삶은 그가 견딜 수 있을만큼의 고난을 가져다 준다지만 이 말조차 그녀에겐 잔인한 문장 같이 느껴지는 까닭은 가장 보호받아야할 시기에 자신이 선택조차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삶을 아무 이유없이 살아내야했기 때문이다.

 

미국이다. 한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어땠을까. 파렴치한 부부에게 최고형이 떨어졌을까. 우리네 땅에서 아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다행스러우면서 앞으로도 이런 일은 세상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얼마전 읽었던 [내 어린 고양이와 늙은 개]에서처럼 세상 모든 어린 것들은 행복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