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조선을 뒤흔든 21가지 재판사건 - 재판 사건으로 바라본 조선의 법 정신
이수광 지음 / 문예춘추사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조선은 탈도 많고 일도 많았다. 조선에 대한 이야기 꺼리들이 끝도 없이 책으로 엮여져 서점가로 나오는 걸 보니 놀랍기만 하다. 같은 이야기 같은데 읽어보면 새롭고 달라서 놀랍고 그 실린 이야기들이 하나같이 극적이라 놀랍다. 왕에 관한 이야기이건, 선비나 신하, 백성들에 관한 이야기건 간에 그들의 지위가 높던 낮던 간에 드라마틱한 요소가 들어 있다.
사건으로 보자면 끔찍한 것들 투성이지만 극적인 면으로 보자면 첨예한 대립구조가 많아 재미는 극대화 되어 있다. [조선을 뒤흔든 21가지 재판 사건]만 해도 그러하다. 뉴스를 보면 하루하루 걸리는 사건들이 끔찍한 것들 뿐이라 사회가 왜 점점 이토록 삭막해지고 끔찍해지나~ 범죄는 왜 더 지능적이 되어가는가 에 대한 회의가 들곤 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었다. 조선시대 사건만해도 작의적이거나 끔찍한 일들이 만연했다.
그 중 가장 끔찍했던 사건은 십세이하 아동의 두 발을 자른 범인을 찾아내는 이야기였다. 아이의 발을, 그것도 어린 아이의 발을 자르다니....! 사이코패스의 짓이거나 무슨 원한이 있는 모양인데 아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여인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그녀는 발목을 자르기는 커녕 오갈데 없는 아이를 잠시 맡아 보살폈다고 했다. 주인의 성화로 다시 내보내긴 했지만 좋은 마음으로 아이를 탁모했다고 한 그녀의 말 또한 신빙성이 있어 판결은 쉬이 내려지지 못했다. 그러던 와중 아이와 관련된 어른들이 하나, 둘, 셋 등장하게 되었지만 그래도 아이는 끝까지 한 여인을 지목했고 여인은 부인했다. 얽힌 사람들의 증언도 여인의 증언에 힘을 실어주고 있던 가운데 의사는 아이의 말처럼 누군가 발목을 자른 단면임을 증언했고 다른 목격자는 동상에 걸리면 간혹 발목이 빠지는데 그런 아이를 본 일이 있다고 했다.
어느 쪽 증언으로 기울지 못한 이 사건은 어느새 유명해져 주상의 귀에까지 흘러들어갔지만 결국 심리는 중지되었다. 그리고 범인은 결국 밝혀지지 않았다. 무죄추정원칙이라는 것. 요즘 재판에서는 어떻게 판결내려질까. 한국의 법과 미국의 법과 일본의 법이 달라 다른 판결이 이루어질까? 어린아이의 증언은 무시되는 것이 현실일까?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하는 아이의 입장에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겠지만 판결을 내리는 쪽도 변호하거나 반대의견을 제시하는 쪽도 그저 하나의 사건일 뿐 지나면 또 다른 사건에 묻혀 잊혀졌을 것이다.
그렇게 묵혀져 있다가 세월이 흘러 지금에서야 한 작가에 의해 우리에게 알려진 이 사건은 아이의 입장에서도 여인의 입장에서도 판관의 입장에서도 오리무중일 수 밖에 없는 것이 꼭 일본의 거장 감독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라쇼몽]을 볼 때 느낌이 이러했었다.
여러 사건들을 보며 사람 살아가는데 일어나는 일들은 예나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구나 싶어진다. 추악한 사건도 감동적인 사건도 결국 사람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었다. 그래서 때로는 더 뜨아 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더 뭉클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