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뱀
표성흠 지음 / 천년의시작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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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참으로 불행한 왕이었던 것 같다. 그는 살아생전 행복했을까?
많은 재능을 타고 났으나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은 곁에 둘 수 없는 운명을 타고 태어났기에 수많은 인재들을 거느리고도 그는 그들의 생명도 자신의 생명도 보장할 수 없는 비운의 왕이었다.

드라마를 보면 강직하고 강인하되 자신의 뜻대로 밀어부쳐도 성사되지 못하는 일투성이였고 정약용, 김홍도, 홍국영 등등을 곁에 두었지만 끝까지 가까이 두지 못했던 사람으로 그려져 있다. 그리고 오늘 한 사람을 더 보탠다면 [열하일기],[양반전]등으로 잘 알려진 인물 연암 박지원이 그 인맥에 보태진다.

소설은 정조 16년 정월. 경상도 안의현에 신임 현감이 부임하며 시작된다. 그가 바로 연암 박지원이다. 권력에 밀려 왕의 믿음을 등에 업고도 조정을 떠나와야했던 천재는 순탄한 길을 버리고 초야에 뭍혀 지내면서도 글을 짓고 사람들을 관찰했다.

시가 곧 사람이라고 믿는 사내.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할 줄 아는 사람. 시도의 아름다움을 선택할 줄 아는 그는 선비의 모습 보다는 모험가의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 돈만 있다면 신분을 사고팔 수 있는 공명첩이 남발되던 시기가 작가의 길을 걸었던 그의 눈엔 가시처럼 거슬렸음이 분명했다. 그의 작품들에도 촌철살인적 상황들이 줄지어진 것만 봐도 세상을 얼마나 불편해하며 한탄했는지 알 수 있다.

벼슬길에 올라 양반을 이어가는 자, 양반이지만 학업정진만 할 뿐 벼슬길을 탐하지 않는 자, 양반을 동주고 사거나 특별공로를 인정받아 양반으로 신분을 갈아타는 자까지 양반을 3종류로 나눈 그는 공명첩으로 신분을 획득한 이들을 일컬어 염소수염양반이라 칭했다. 웃음이 터져나왔다. 너무나 연암다워서.

인간의 본성을 물이 고요히 가라앉아 대상물을 비추듯 바라본다는 해안을 가진 그의 곁에 어느새 자미라는 신비로운 여인이 머물면서 이야기는 약간 핑크빛이 되나 했으나 역시 뿔뱀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처럼 시대의 아웃사이더인 연암비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딱딱하지도 그렇다고 속되지도 않은 소설의 깊이가 마치 무더운 날 시원한 대밭에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만들었다.

연암이 안의에 내려와 지내던 4년. 그는 여전히 이방인이면서도 가장 날카로운 관찰자가 되어 자신의 일상을 소설화하기 여념이 없는 지식인이자 작가였다. 날카로운 눈을 가진 그는 정말 뿔뱀을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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