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회에 다녀왔다. 얼마전 일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 애니메이션 시사회 초대를 받고 친구와 함께 동행했는데, 아이가 있는 친구는 이미 원작을 읽은 상태였다.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었던 나와 원작을 알고 있던 친구의 감동은 그 깊이차가 얼마나 되었을까. 마지막에 "나를 먹어"라는 암탉의 슬픈 대사에 충격을 받은 나머지 좀처럼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몰랐던 나를 친구가 일으켜세웠다. 원작ㅇ르 보면 닭장을 나오기전까지가 참 처절하게 묘사되어 있다며 원작을 권하면서. 그렇게 친구의 권유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원작을 읽기 시작했는데, 원작은 애니메이션보다 많은 내용들로 채워져 있었다. 비록 유머의 달인 달수씨가 없어 서운했지만. 잎싹은 아파트같은 닭장 안에서 매일 알을 낳아야하는 암탉이었다. 조금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마당을 동경한 나머지 독한 마음을 품고 곡기를 끊어 마당으로 탈출하는데는 성공했으나 보금자리를 잃은 그녀에게 쉼터를 내줄만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때마다 주어지던 끼니조차 스스로 해결해야할 판이었다. 족제비의 공격에서 구해준 청둥오리 나그네에게도 의지할 수 없던 그녀에게 소망을 이룰 순간이 다가왔다. 짝을 잃은 이웃, 이웃 청둥오리의 알을 대신 품어주면서 그토록 꿈꾸던 엄마가 된 잎싹이. 하지만 그 이웃조차 배고픈 족제비에게 잡혀가고 갓 부화한 새끼 "초록머리"와 터전을 옮겨가며 살아가지만 세월은 어쩔 수 없어 사춘기에 접어든 초록머리는 다르게 생겼다는 이유로 엄마를 멀리한다. 외로움과 그리움으로 바싹 말라가던 잎싹이 세상 무서운 줄 모르던 초록머리를 마당에서 구해내면서 극적으로 화해했으나 곧 무리에 속해 땅을 떠나는 청둥오리와 안녕하는 순간 잎싹은 족제비의 먹이가 된다. 애니메이션과 원작. 둘 다를 보면서 극 속에서 가장 잔인한 존재는 인간이었다. 그토록 미웠던 족제비조차 제 새끼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 또한 자신의 배고픔을 위해서만 사냥을 하지만 인간은 넉넉하면서도 더 욕심을 부리며 자연의 생물조차 날개를 꺾어 제 마당에 두려했다. 어쩔 수 없어가 아닌 더 갖고 싶어서 다른 생명을 해하는 동물은 인간밖에 없는 것일까. 주어진 것에 순응하며 살기보다 자신의 이상향을 향해 살다간 잎싹은 마지막 순간 후회가 없었을까. 배고픔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닭장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어느 광고에서처럼 "개고생"이 시작되었지만 줄곳 신나했던 잎싹. 원하던 삶을 살게 된 잎싹에게 배고픔과 외로움은 훗날의 걱정거리일 뿐이었지만 곁에서 바라본 나는 이 암탉이 참 안쓰럽게 느껴졌다. 자유의 댓가가 고생과 죽음이라니.....!!! 디즈니 원작의 [추위를 싫어하는 펭귄]이 목욕통을 타고 바다를 건너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행복을 찾을 것처럼 잎싹도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만은 안타까움만 가득묻혀 놓은 채 사라진 이 암탉에 대한 연민은 어디에서 식혀야 좋을지 아직 잘 모르겠다. 자연의 섭리, 약육강식 을 들어 동화의 정당성을 말하려는 이가 있을수도 있겠지만 이 동화는 그보다는 좀 더 따뜻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한 암탉의 꿈과 모험이 담긴 동화임을 기억해주면 좋겠다. 행복의 길이가 아닌 행복의 깊이를 알다간 이의 삶으로 이해해보면 어떨까. 아픈 마음이 잦아들면 극장을 다시 찾아 좀 더 찬찬히 애니메이션을 구경해야겠다. 좋은 작품은 두번, 세번 봐도 좋듯 이 동화는 두 번, 세번 봐질 것 같은 마음이 들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