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촌 기행
정진영 지음 / 문학수첩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도화촌기행]이라는 제목만으로 나는 도포입고 갓 쓴 인물이 주인공인줄로만 알았다. 문학시간 고대소설을 배울 때 처럼 고어들이 수루루 쏟아지며 나를 조선시대쯤으로 데려다 놓는 것을 아닐까 싶어 살짝 긴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의 그것도 서른 아홉이라는 주인공을 앞에 두고 보니 참 남달랐달까. 

흔히 판타지라 하면 해리포터 나이의 아이들이 등장하거나 반지의 제왕에서처럼 귀가 뾰족한 요정이 등장하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시간의 책에서처럼 시대를 텔레포트 하는 기술 정도는 등장해야 정상이었지만 [도화촌 기행]은 이 모든 편견의 고리를 끊고 현대에서 제 3의 장소로 이동하면서 이야기가 이어지게 만들어 두었다. 

뒷바라지 해 줄 마땅한 가족도 없이 오랜 시간 고시촌에서 버텨온 서른 아홉의 고시생 범우. 여전히 1차에 목매고 있으며 답답하기 그지 없지만 막상 그만 둘 수도 없는 처지에 처해 있다. 고시촌에서 해를 넘긴 사람들의 인생그래프가 그러하듯 그 역시 나이와 숙소 위치 이 두 가지만 올라갔고 그 밖의 건강, 합격 가능성, 취업 가능성, 결혼 가능성 등등은 점점 하락세에 있다. 

p. 248 세상에는 아무 이유 없이 살고 있는 생물이란 없는 법

이라지만 이 시절의 범우는 아무 이유 없이 살고 있는 생물 같이 보인다. 그런 그가 술에 취해 고양이를 따라 관악산에 오르다 쓰러졌는데 일어나보니 그는 도화촌에 다달아 있었다. 모든 것을 대답하고 있지만 아무 것도 알아들을 수 없게 만드는 노인의 배려로 도화촌에서 살게 된 범우. 시험에 대한 근심도 내일에 대한 걱정도 없이 그저 열심히 일하면 밥걱정, 집걱정 없는 이곳의 생활에 "대박"을 외쳐도 좋으련만 그의 마음 속 어딘가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욕망은 그를 또 다른 유혹에 빠지게 만들었다. 

드라마 [크크섬의 비밀]에서 상현 캐릭터처럼 범우 역시 로또에 당첨된 것이다. 무료 40억원이라는 금액에 당첨되었지만 빠듯한 지급시간 안에 도화촌을 빠져나가지 못해 결국 로또는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다. 실의에 빠지고 나서야 도화촌에서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 이곳에 온 사연에 귀를 기울이게 된 범우는 그제서야 운명이 왜 자신을 이곳에 데려다 놓았는지 깨닫게 된다. 

깨달음을 얻고, 선택의 시간이 오자 그는 주저 없이 편한 도화촌의 삶을 등지고 빡빡한 고시생의 신분으로 되돌아가 다시 한번 도전해 보고자 맘 먹는 쪽을 선택했다. 목표를 상실하고 그저 허무와 안달만으로 가득했던 어제와 달리 이루어야만 하는 목적이 뚜렷해졌기에 좋은 결과를 꿈꾸며 타협대신 도전을 선택했던 것이다. 

시크릿의 저자가 봤다면 아주 흡족했을 선택을 한 범우에게 운명이 준 선물인지 노인이 준 선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돌아오자 마자 1차 합격의 행운이 기다리고 있어 그가 앞으로 이루어낼 내일에 대한 암시를 주고 있었다. 

2회 조선일보 판타지 문학상 당선작이 없었던 까닭인지 3회에는 두 편이 공동당선작으로 발표 되었는데 그 중 한 편인 도화촌 기행은 제목만으로도 심사위원들의 기준을 눈치채게 만드는 작품이었다. 한국형 환상문학. 그들이 주목한 것은 바로 글로벌의 초석을 고유성과 동시대성에 두고 심사하였다고 후미에 밝히고 있어 기존에 품어왔던 판타지 문학과는 다른 묘미를 느끼게 만든다. 나이가 어리지 않고 마법을 쓰지 않는 캐릭터라도 판타지 문학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 [도화촌기행]. 수많은 캐릭터들의 환호소리가 귓가를 맴도는 가운데 1억원이라는 큰 고료의 수상작 중 한 권은 이렇게 쉽고 빠르게 읽혀지며 다른 수상작을 궁금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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