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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븐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8
가와카미 미에코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왕따"를 소재로 한 소설들은 참 많다. 왕따를 최고의 인기인으로 키워내는 것으로 유쾌하게 풀어낸 "노부타를 프로듀스"도 있고 소문으로 인해 자살한 친구가 전해온 음성으로 시작되는 "루머의 루머의 루머"류의 소설도 있다. 누군가의 수기는 왕따시절을 견디지 못하고 호스티스가 되었다가 법조인이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고 또 누군가는 왕따 시절이 있었으나 개의치 않고 꿋꿋이 견뎌내어 하버드 법대생이 되었다고 했다. 현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어버린 슬픈 단어 "왕따" 가와카미 미에코의 소설 역시 이 "왕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소년 "나"는 사팔뜨기다. 새엄마는 좋은 사람이지만 친모로부터 유전되어온 사팔뜨기를 고쳐주진 못했다. 한번했던 수술이 실패로 끝나고 나서는 포기한 채 운명을 받아들이며 사는 소심한 소년이지만 받아들여야할 운명은 사팔뜨기만이 아니었다. 교내 모두에게인기인인 니노미야 패거리로부터의 왕따는 실로 처참한 것이었는데 코에 분필을 쑤겨박거나 분필을 갉아먹으라고 주문하는 것은 아주 편한 일에 속했다. 어두운 체육관에 갇히고 구타당하다가 급기야 공공장소에서 옷까지 발가벗겨지는 수모를 당하면서 "나"는 새엄마에게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나"의 왕따사실을 알고 있는 소녀가 있었으니, 그녀는 또 다른 왕따인 "고지마"였다.
가난하며 가정형편이 좋지 못한 "고지마"를 애들은 "공해"라고 불렀다. 불결하다는 의미였는데 "음식물 쓰레기" 따위로 불리는 사춘기 여학생의 마음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왕따놀이에 휩쓸린 아이들도 어른으로 자라 이 시기를 되돌아보면 한 소녀에게 퍼부었던 자신들의 철없던 행동에 일말의 후회를 하게 되는 순간이 올까.
고지마로부터 "우리는 같은 편이야"라는 쪽지를 받는 순간 "나"는 이미 혼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사팔뜨기가 아주 저렴한 수술비용으로 고쳐질 수 있다는 의사의 말을 듣는 순간 그녀는 멀어져갔다. "나"가 사팔뜨기를 고치고 나면 그들이 사는 세상은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의 왕따가 과연 사팔뜨기라는 이유때문이었을까. 한패거리인 모모세는 왕따의 이유가 사팔뜨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말하면 왕따가 필요한 순간에 그 자리에 있어준 재수없는 녀석이 되어버렸다는 것.
그의 말이 사실인지, 그녀의 말이 사실인지 알 순 없지만 분명한 것은 만 오천엔으로 되찾은 눈은 이제껏과 다른 세상을 보게 만들고 있었고 유쾌하지 못했던 현실을 잊게 만들었다. 헤븐은 성장소설의 형식을 벗어나 극복스토리가 아닌 인생의 다른 가능성을 찾아 눈을 돌리게 만듦으로써 또 다른 희망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받아들이는 것도 피하는 것도 선택하기 어렵다면 차라리 "나"처럼 다른 세상을 택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죽음의 길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이라도 시도해봄이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