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도시, 오래된 성性
이승우.김애란.김연수.정이현 외 지음, 김태성.양윤옥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5월
평점 :
품절


내가 지금 제대로 읽고 있는 것일까?

오랜만에 제대로 적수를 만났다.  원수가 아니라서 외나무 다리에서 만난 것은 아니나 시원치 않은 날씨 속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읽어내야만 할 만큼 쉬이 읽어내지 못할 소설  한 권을 들고 나는 하루 종일 낑낑대고 있었다. 

[젊은 도시, 오래된 성]은 한,중,일 삼국의 12작가가 하나의 키워드에서 뻗쳐져 나온 상상력을 기록한 단편 모음집이다. 아시아라는 테두리 안에서 작가라는 공통의 직업군을 가진 그들이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하며 느꼈을 감정들이 다분히 실려 있고 같은 시간, 다른 공간이라는 매력적인 키워드 아래 써낸 소설들이라 결코 가볍게 읽힐 성질의 것들이 아니었다. 

단편이라는 짧은 길이감이 주어진 것 치고는 꽤 무게감 있게 읽혀지는지라 나는 단 한 순간의 템포도 늘이거나 줄일 수 없었고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어쩔때엔 한 작가의 작품읽기가 끝나야 몰아쉬는 숨의 존재를 인지하기도 했다. 

도시와 성에 관해 이토록 다양하게 이야기를 엮어낼 수 있다는 점과 그들이 뱉어낸 이야기가 현실의 누군가의 사연인 것만 같은 리얼리즘적 요소에 감탄하면서 "한중일 문화 공동체"가 뿜어내는 소통의 삼중창의 하모니가 작년 한 프로그램에서 보여준 하모니 못지 않음에 박수를 쳐 주고 싶어졌다. 

12작가의 이야기지만 분명 기억에 더 짙게 남는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다른 단편집을 통해 이미 읽었던 물속 골리앗을 제외하니 이승우 작가의 칼이라는 작품이 아주 인상적이어서 먼저 떠올려졌다. 

p.54 누구나 칼 한 자루씩 품고 산다

는 멋진 문장이 새겨진 소설은 해가 질때부터 뜰때까지 노인의 말상대가 되어야하는 주인공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다음으론 저승에서 한 시간을 보낸 뒤 부활한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시마다 마사히코의 단편이 떠올려졌는데, 그는 가수 조영남처럼 대표작이 없지만 유명한 작가인데 이미 타계했다고 한다. 그간 단 한번도 그의 책을 읽은 바가 없어 처음으로 대하게 된 필체는 평범하면서도 재미면에서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구석이 있어 편안하게 읽게 만들어주는 데가 있었다. 

p. 170 밤은 죽은 자들이 이승에 두고 온 사람들과 교류하는 시간

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이 말 그대로라면 밤시간을 그토록 무서워한 어린 시절이 참 바보같이 느껴진다. 자라면서 누가 이런 현명한 말을 미리 해 주었다면 그토록 무서워하며 두 눈 질끈 감고 잠들지 않아도 좋았을텐데.....!!!

그 외에도 샹차오잉을 밀회 공간이자 안식처로 활용한 남녀의 이야기가 담긴 샹차오잉의 이야기도 다음으로 떠올려진다. 공산국가인데도 부조리한 면에 대해 사회에 문제제기를 할 수 있구나에 감탄하게 만들기도 했으며 장소나 시간이 소설의 중요 모티브가 될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도 만들었다. 12작품을 두루 읽으면서 작가의 얼굴을 먼저 보고 작품을 읽는 느낌이 참 새롭고 좋았으며 마치 작가가 소개해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 더 기분 좋게 만들어주었던 것 같았다. 연재소설을 읽는 느낌이라 이 즐거움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을 전달받아 두꺼운 한 권을 읽는 내내 즐거움에 빠져들게 만들기도 했다. 젊은 도시, 오래된 성은.

다르다는 것이 나쁘지 않음을 증명해준 작은 예가 아닐까 싶어 더 의미깊게 읽고 많은 메모를 남기게 만든 한 권의 책을 6월에 약속한 마지막 소설의 리뷰로 남겨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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