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익은 세상
황석영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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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황석영 문학인생 50년 담금질!!!


이 이상 좋을 수 있을까?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 나는 이 책으로 시작하려 한다. 남들은 참 많은 책을 읽는다고 부러워들하지만 남의 불구경하듯 내게 그런 소리는 고막을 가로지르지 못하고 걸러져 버린다. 내겐 별로 중요한 이야기들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참 감사한 일 중 하나는 이렇듯 걸러서 내가 듣고 싶은 소리만 들을 수 있는 특별한 귀를 달고 세상에 나오게 해 주셨음인데, 특수귀 덕분에 나는 칭찬에도 우쭐하지 않고 비난에도 쉬이 절망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었다. 

물론 감정의 선이 붉다보니 욱 할때도 있고 강자에게 강하게 굴고 약자에게 약하다보니 교묘하게 뒤통수 맞게 되거나 된통 혼날때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나다운게 좋아 이리 살아가고 있고 이런 나를 좋아해주는 내 사람들이 있어 늘 행복하다. 

유작이 아닌지라 계속 작품을 낼 작가에게 "이 이상 좋을 수 있을까요?"라고 들이댔다간 "뭬야?"라며 버럭질을 당하게 될지도 모르지만 전작들의 좋은 느낌을 다 내려놓고 이번 작품을 가장 마음가는 작품의 1순위에 올려놓는다. 그동안 수려한 작품들은 화려한 수상경력을 후광삼아 나타났지만 빼곡히 들어찬 어려운 외투들로 인해 눈길, 손길이 쉬이 가지 않더니 거장의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낯익은 세상]은 쉽게 읽히고 빠른 눈발자국을 찍어가며 읽는 내내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다. 

쉽게 다가와 진한 감동을 우려내어버린 이 작품을 두고 어떻게 이 이상 좋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단 말인가! 그건 욕심이 로또를 찌르는 소리일게다. 

....이 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한국 땅에도 이런 곳이 있을까 싶어질 정도로 낯설은 마을의 풍경은 마치 단비에서 보여주던 타국의 쓰레기 마을 아이들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 같아 이질 적이었고 어색했다.  후진국의 열악한 환경은 안타까움의 눈길로 바라보았으면서 막상 우리 땅에도 이렇게 살아갈 아이들이 있다고 상상하니 갑자기 낯설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믿고 싶지 않은 마음에.

아버지가 잡혀가서 먹고 살기가 막막해진 딱부리는 열넷이다. 하지만 남다른 발육탓에 언제나 열 여섯으로 통했고 먹고 살기 위해 나이를 속이고 학교를 그만 둔 채 어머니를 따라 쓰레기 마을로 입성했다. 엄마와 같이 사는 남자의 아들 땜통이 "형아!형아"하며 졸졸 쫓아다녀 귀찮긴 해도 여간 쓸모있는 녀석이 아닌지라 둘은 모태적부터 단짝인양 붙어다녔는데, 죽은 자들이 보이는 땜통은 비슷한 눈을 가진 빼빼네 엄마네 집으로 자주 놀러 다니곤 했다. 이젠 정말 정호나 영길이란 이름 따윈 중요하지도 기억나지도 않았다. 두 아이들에겐......!!

하루종일 쓰레기를 뒤지고 그 속에서 돈 될만한 것들을 골라내고 팔아가며 살아가는 사람이 모인 곳, 쓰레기 마을. 골골이 배여있는 냄새만큼이나 막장 인생들이 우글우글한 이 곳 역시 사람 사는 곳임을 알려주는 이는 역시 아이들 뿐이었지만 제도권 아이들과 다른 시간을 사는 아이들이었기에 읽는 내내 불편한 진실 앞에 선 사람처럼 안절부절 할 수 없기도 했다. 

난지도 쓰레기 장에 묻힌 것은 푼돈들이 아니라 그네들의 오늘과 내일 인 것 같아 서글퍼졌다. 그래도 살아 있어 고맙다라고 말해야 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천진난만한 두 아이의 모습에 대견함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묻혔던 불법 폐기물이 폭발하면서 오두막 동네는 쑥대밭이 되고 땜통이도 죽어버렸지만 딱부리는 이 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죽은 땜통이 머물고 있고 여전히 삶의 터전인 이곳을.....!!

뒤도 안돌아보고 당장 떠나고 싶을 만큼 열악한 환경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며 머물기를 자청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던 내게 결말은 조용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에겐 분명 낯선 세상이지만 그곳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낯익은 세상임을 작가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것일까. 

고요하면서도  자작자작 감동에 젖게 만드는 세상으로 이끄는 작가의 안내가 벌써 50년째다. 그래서인지 풀어내는 문장문장이 숙성된 문장이었고 발효된 구절들이었다. 우리 시대 진정한 글의 장인이 담아낸 작품은 언제나 그 맛에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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