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수성이 간다 - 신주쿠 구호센터의 슈퍼히어로
사사 료코 지음, 장은선 옮김 / 다반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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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 비관하고 삐뚤어져 버릴테다~!!며 삐뚤어진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 환경을 뛰어넘는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다. 유전과 환경의 영향을 반반으로 두고 볼때 불행한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고 해서 모두가 범죄자로 살아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지만 우리는 언제나 슈퍼 히어로의 등장을 기대하며 살아간다. 너무나 힘들어 주저 앉고 싶을 때, 누군가에게 손내밀고 싶어질 때 필요로 하는 것은 "기적"도 "요정이나 지니"도 아닌 "슈퍼 히어로"의 존재다.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 맨 등등. 뛰어난 힘을 가진 존재가 나의 편이 되어주는 것을 기대하기에 히어로 코믹스는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인기가 있는 것일게다. 

하지만 그들 슈퍼 히어로 역시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어선 초인들이었는데, 슈퍼맨은 자신의 별이 파괴되고 부모도 없이 지구로 떨어진 천애고아였으며, 배트맨은 눈 앞에서 가족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지켜봐야했고, 스파이더 맨은 자신의 한순간 선택으로 조부모가 살해되는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게다가 그들 셋 모두 사랑하는 여인과 이어지지 못한 아픔까지 겪어내며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출동하는 24시간 풀가동 시스템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아간다. 

그들처럼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자는 아니지만 이 시대에 분명 우리가 필요로 하는 힘을 가진 한 남자가 저 멀리 바다 건너 일본 땅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은 [현수성이 간다]를 통해 발견했을때 느껴지던 통쾌함이란, 마치 길가던 슈퍼맨에게서 싸인을 받는 것보다 훨씬 희열감에 휩싸이게 만드는 일이었다. 

현수성. 이름조차 낯선 이 영웅은 20대의 팔팔한 젊은이도 아니고 도덕과 윤리로 똘똘 뭉친 인격을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도리어 도덕이나 윤리가 밥을 먹여주지 않았다고 회고하며 부당한 폭력에서 보호받지도 못한 어린 시절을 겪으며 거칠고 어둡게 살아온 인생의 주인공이었다. 

1956년 5월 각각의 한국인 피를 물려준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육체적 학대와 성적 학대를 당하며 살았고 멸시와 구타는 일상으로, 공포로 사람을 조정하는 법은 어린 시절부터 스스로 체득하며 살아남았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계속 되는 재혼과 아이를 맡지 않으려는 발버둥에 떠밀려 사랑과 보호받는 삶과는 거리가 멀게 자라 "히라야마"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접수하며 어둡게 살았다. 지킬 것이 없으면 뺏으러 오는 자도 없다는 논리를 정답으로 알고 살아온 현수성은 대체 뭐하는 사람이란 말인가?

우리에겐 이름조차 낯선 그가 한국인을 멸시하는 일본사회에서 왜 관심의 대상이 되어 있고 그의 이름 석자에 열광하고 있는지 드라마틱한 삶을 너머 그가 전하는 삶의 진실이 무엇인지 나는 책을 통해 전달받았으며 신주쿠 구호센터의 슈퍼 히어로가 하고 있는 독특한 구호 활동에 눈과 귀를 열게 되었다. 

p.48  죽는 건 쉽다. 
          하지만 살아가는 것은 어렵다
          그러니 살아남아 주겠다

라고 결심했던 것은 초등학교 2학년때. 이후 특이 바이러스 발병으로 죽음과 마주하면서 그는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봉사의 삶으로 뛰어들었고 일본 최대의 환락가인 가부키표에서 "카케코미데라"의 소장 현수성으로 살아오고 있다. 이후 줄곧.

인부파견업으로 재산을 많이 모았고 재계 및 정계와도 줄이 닿아 있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그가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호스티스,창부,동성애자 등등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윤락가에서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가고 있다. 가장 밑바닥 인생이라 그 누구도 더 이상 건져내줄 수 없을 것 같은 하류 인생들을 그래도 오늘을 살아가게 만들어주며 만 명이 넘는 일본인들을 구하고 있는 재일 한국인, 현수성. 

우리는 왜 이토록 유명한 그의 이름은 여지껏 들어본 일이 없었던 것일까. 역도산 이후 최고로 유명한 한국인이라는 그의 이름을.  IT강국이며 광랜이 집집마다 깔린 대한민국에서 사람과 소문에 대한 정보가 이토록 느리다니....우리는 기술의 발전은 발 밑바닥에 깔아놓고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 보아야할 대목이다. 

지금 이순간을 살아간다는 의미인 일일일생을 신조로 살아가고 있는 그는 "신주쿠 구호센터"를 오픈 한 이래, 365일 무휴,24시간 풀 가동 체제를 멈추지 않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흠칫 놀랄만도 한 야쿠자와의 대면 순간조차 당당하게 그들을 막아서며 단 몇마디로 제어해 버리는 담대함은 위인전 속에서나 읽어본 듯한 이야기였을 뿐이다. 

현수성은 독특하게 살아온 이력의 소유자다. 현수성은 강인한 인간이다. 현수성은 이 시대가 원하는 우리의 히어로 상이다. 

이 세 결론만으로 그는 우리의 다큐멘터리 주인공으로 한번쯤은 봐왔음직한 인물이지만 부끄럽게도 우리는 그의 소식에는 문외한들이었다. 인간이 누군가를 구원하는 일은 거의 기적과 맞먹는 확률일 것이다. 그런데 한 명도 아닌, 연고자도 아닌 불특정 다수를 향해 살아남는 삶을 제공하는 그는 정말이지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 부르짖었던 "정부가 국민에게 제공해야하는 최소한의 평등"을 실천하는 민간인이었기에 그의 존재 자체가 고맙게 느껴진다. 적어도 목숨은 부지할 수 있을 힘을 실어주는 일. 그는 그 어떤 부유한 국가의 정부도 해내지 못한 일을 개인의 힘으로 이어가고 있다. 그래서 놀랍고 또 감동적이다. 

처음 그가 뭐하는 인물인지 궁금했는데, 그의 이야기를 읽고나니 어째서 그의 인생이 일본에서 그토록 유명해졌는지 수긍이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한국인들도 놀랄만한 일들이 가득했다. 책 속엔.

자신은 부당한 폭력 앞에서 보호받지 못했지만 누군가는 구해주고 싶은 마음이 그의 삶을 180도 바꾸어 놓았던 것이다. 세계구호전문가 한비야 같은 인물의 삶도 감동이지만 환락가에서의 현수성만의 독특한 구호 활동 역시 우리에겐 마찬가지의 감동을 전한다. 

어쩌면 몰랐었을 한 인물의 오늘 하루가 전세계 사람들에게 알려져 같은 감동과 위로를 전하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그런 마음으로 정성을 담아 서평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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