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여자의 일생]을 읽고 어린 마음에 작가를 한동안 원망하며 지냈다. [테스]때처럼 여자의 인생이란 무언가 불공평한 것들로 가득찬 것만 같았고 남자들에게는 허용되는 일들이 여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세상의 잣대가 싫어 삐쳐버린 생선마냥 입을 비쭉대며 다녔던 기억이 있다. 소설을 읽고난 뒤의 세상은 이전과는 분명 다른 세상이었기에.

[덕혜옹주]를 읽으며 그맘때의 어린시절, 어린 마음이 떠올랐다. 그만큼이나 같은 마음으로 읽혀져버린 소설이었기에 조선의 마지막 황녀의 인생은 그맘때 조선의 여느 여인과 다르지 않은 비참함이 잔뜩 묻혀져 있었다. 혼란의 시기에 위정자들은 잘먹고 잘 살고 권력을 휘두르며 후세가 먹고살 방편까지 마련해놓은 반면 우국지사들은 후세는 커녕 제 앞가림조차 힘든 나날들의 연속이었지만 그들은 자신이 택한 길을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세상은 참 불공평해서 그들의 선택에 따른 결과를 후손들이 여전히 이어지고가게 만들고 있기도 했다.

부자가 망해도 먹고살 길은 열려 있고, 난세에도 귀족들의 지위는 변동이 없어보이는 듯 했지만 조선 왕실의 여인은 그 고귀함을 지켜나갈 혜택을 허락받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명성황후 시해 이후 급격히 쇠약해진 고종의 단 하나의 즐거움이었다는 막내딸 덕혜.  급사한 아비의 운명은 그녀의 운명또한 바꾸어 놓았고 소설 속에서 이미 정혼자가 정해져 있었지만 대마도주에게 강제 혼인당해 이 땅을 떠나야했던 덕혜에게 조선이란 어떤 땅으로 기억되었는지 남은 삶을 살아가는 여정에서 몸소 보여주고 있다. 그것이 어쩌면 비극이었는지도!!!!

평범한 양민들조차 총칼 앞에 창씨개명하던 시절, 황녀는 조선의 것들을 지켜나가고자 했고 그런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정적들에게 미친 여자의 삶처럼 보여졌을 것이다. 길다란 남자 옆에 양장을 하고 선 자그마한 여인의 사진을 통해 처음 접했던 덕혜옹주는 참 암울한 모습의 여인이었다. 웃음기가 싹 가신 그녀의 얼굴에선 루머처럼 들려오던 "미친 여자"의 허상이 실제처럼 입혀져 보였으니 어쩌면 그 시절 일본의 관료들은 인격적으로는 최악이었지만 사회적으로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마케팅 실력자였던 것이다.

정말 그녀는 미쳐있었던 것일까. 무엇이 그녀를 미치게 만들었을까. 자신을 지켜내지 못한 조선? 미워하며 살아야했던 일본인 남편? 조선의 것을 거부하던 딸, 정혜? 그 해답이 소설 속에 있었다. 그리고 남겨진 물음 하나. 정말 그녀는 미쳐있었던 것일까.

일본식으로 물들어가지 않던 그녀를 미친 여자로 몰고가서 파멸시키는 것을 쾌락의 자락으로 삼았을 그들에게 그녀는 정말 미친 여자였을 것이다. 실제로 정신이 온전했든, 그렇지 못했든 간에.

독립투사의 딸로 태어나 덕혜를 모시며 결국 그녀를 대신해 죽어간 복순이라는 여인 또한 그 시절 이 땅의 여느 여인과 다르지 않았겠지만 시대가, 망국의 한에 평범한 여인으로서의 삶을 빼앗긴 또 다른 슬픈 이름이요, 황녀의 삶과 비등비등 했다. 그래서 더 슬퍼지는 소설 덕혜옹주는 도쿠에 히메가 아닌 덕혜옹주로 살아가기를 원했던 뜻을 굽히지 않았던 한 여인의 삶과 역사속에서 잊혀졌던 우리의 얼을 함께 담아 그 의미를 부여했는데 부끄러운 일은 우리의 손으로 먼저 그녀를 재조명하지 못하고 일본인의 손에 의해 먼저 알려졌다는 점이었다.

식민의 시대는 끝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들이 남긴 문화적 편견과 역사적 우물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개구리인 것만 같아 씁쓸해지고 만다. 그 쓸쓸함의 어귀에서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를 만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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