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밤, 기린의 말 - 「문학의문학」 대표 작가 작품집
김연수.박완서 외 지음 / 문학의문학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깊은 밤 , 기린의 말 은 너무나 예쁜 제목이었다. [세계의 끝 여자친구]의 작가 김연수는 이렇듯 예쁜 제목을 세상에 내어놓았다. "아빠와 엄마는 우리를 동물원에 버리려고 한 적이 있었다"라는 끌리는 첫문장을 던져주면서. 자폐아 동생이 있는 쌍둥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가족구성원들은 아프고 상처입었다기보다는 평범해보인다. 인간적인 고뇌와 누구나 생각으로는 한번쯤 해 봤을법한 일들을 풀어놓으며 우리에게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게 만든다. 글의 끝부분에 기린이라 이름붙여진 개를 되찾으러 가는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을 덧붙여놓고.

 그와 비슷하게 경성사범 출신의 똑똑한 시어머니와 이혼하고도 당당한 신세대 며느리 사이에 어중간하게 끼여있는 여인의 넋두리는 얼마전 타계한 박완서 작가의작품이다. 갱년기의 기나긴 하루 라는 제목으로, 작가의 기존 스타일에서 크게 벗어남 없이 평탄하게 읽어나가면 되는 그런 작품이었다. 다만 앞으로는 그녀만의 글을 읽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 슬프다면 슬픈 일이랄까. 

<문학의 문학>대표작가 작품집이라는 타이틀 아래 10명의 작가들이 뭉쳐 낸 책 속에는 고전적인 느낌을 주는 글도 실려 있다. 가장 좋아하는 한국소설인 [당신들의 천국]을 집필한 이청준 작가의 이상한 선물인데,선바우골에서 심지연이라는 신통방통한 벼루를 얻게되나했더니 속임수였더라 라는 식의 마치 고전소설에서의 일장춘몽같은 신기루이야기가 짧게 실려 있었다. 무언가 미스테리한 구석을 기대했었는데 기대는 빗나갔지만 대가의 작품이라 짧은 단편도 쉬이 지나칠 수 없어 꼼꼼히 읽어내려간 소설이었다. 

그에 반해 권지예 작가와 이승우 작가, 조경란 작가의 작품은 눈에 확 띄는 재미를 보여주고 있었고 세 작가의 작품은 각각의 스타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 그들만의 단편집을 읽는 것같은 착각마저 들었던 작품이었다. 좀 더 길었으면...이라는 생각마저도 잘라내게 만들 딱 알맞은 길이감과 쉼없이 읽어나가게 만드는 속도감이 마음에 들었던 단편들이었다. 

먼저 권작가의 소설은 사라진 여자의이야기로 시작된다. 100피스~1000피스에 이르기까지 퍼즐홀릭인 여자는 금치산자다. 미쳐서가 아니라 미친 사람으로 몰려가는 여인의 인생을 바라보며 그녀가 빈집 길고양이들과 다를바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전처소생의 딸도, 아들만 필요해서 매번 11주된 뱃속 아이를 중절시키게 만든 시어머니의 5대독자 아들도 그녀의 진정한 가족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는 숨바꼭질을 통해 스스로 사라졌다. 퍼즐은 제목과 달리 맞춰가는 인생이 아닌 어딘가 흘려져버린 조각같은 인생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서글픈 일이다. 

아프리카계 남자가 보러간 사람은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한 인물 중 하나인 나사렛 예수였다. 그는 선지자를 만나러 갔다가 시간을 잘못택해 베드로가 스승을 세번 모른척 하는 현장도 목격했고, 심지어는 그 대신 십자가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만났고 그로 인해 자신의 인생이 이전과는 달라졌음을 깨닫게 되는데서 한 구레네 사람의 수기는 끝이난다. 정말 그날, 그 현장에서 누군가는 이랬을법한 드라마틱한 요소가 가득했던 소설인채로.

최근 [복어]라는 소설로 주목하고 있던 조경란 작가는 역시 스토리텔러였다. 가족 안에서 잔잔하면서도 큰 파도의 깊이를 느끼게 만드는 작가만의 매력을 잔뜩 부풀려놓아 읽는 즐거움을 저절로 느끼게 만든다.  자동차사고로 남편과 아이를 동시에 읽은 언니는 대학행정실에서 학생들에게 등록금 독촉전화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별로 탈출구가 없어보이던 삶에 동생의 사고는 전환점이 되어 주었다. 도쿄에 사는 동생의 살림을 잠시 맡기위해 떠나는 그녀의 보따리를 붙들고 늘어진 사람은 나이든 아버지였는데, 이전에 그가 어떤 가장이었는지는 모르나 함께 떠나 도쿄를 누비고 다니는 모습 속에는 권위적이거나 카리스마있는 가장의 모습은 쏘옥 빠져있었다. 늙은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과 가족으로서의 자신을 다시금 되짚어보게 만드는 힘을 전달해주는 강인한 느낌이 있는 단편이었다. 역시 조경란 작가는 계속 주목해볼 작가 중 하나로 꼽아두게 만들만큼 마음에 드는 이야기였다. 파종은.

마지막으로 제삿날은 가장 요즘 읽은 몇몇 소설에서도 언급되었던 신고려장 같은 내음이 물씬 풍겨나왔는데, 의외의 반전이 있어 재미를 톡톡히 살리고 있다. 도리라는 것이 통상적으로 어디까지를 뜻하는지 범위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을 것이다. 두 늙은 과부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 두 아들과 며느리들은 어머니를 간병하는 것은 물론 오랜세월 함께 살아온 할머니이 간병도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떠넘길 수만 있다면 두 노인네를 어딘가에 떠넘기고 싶은 것이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런 가운데 일치감치 할머니를 아내를 얻으면서 내다버렸던 할머니의 아들 또한 어떻게하면 그들에게 자신의 어머니를 지금껏처럼 마지막까지 짐지워 내버릴 수 있는지 고민중이다. 자식들의 뇌구조 속 가장 큰 자리를 차지하는 생각들이 이 사회가 떠안고 있는 병폐처럼 느껴져 마음한구석이 급 우울해졌고 제 부모를 떠넘기는 그들의 파렴치함에 치를 떨어야만했다. 반려동물과 단 1년을 살아도 가족이라는 마음의 울타리가 쳐지는 마당에 오랜시간 보호자였던 부모를 짐짝처럼 여기는 자식들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질탄받을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겠다. 

하지만 이야기는 복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 재미는 제목에서부터 찾아낼 수 있다. 제삿날. 대체 두 할머니는 누구의 제삿날을 챙기기 위해 나갔다가 사고를 당했던 것일까. 비밀처럼 독자에게만 알려주는 이야기 속에는 안그래도 자식들을 버리려는 아들들에겐 절대 알려져서는 안될 과거사가 숨겨져 있었다. 두 어머니 다 제 자식들에겐 친어머니가 아니었다는 사실! 그래서 그들 몰래 매년 그들 생모들의 제사를 할머니들이 챙겨왔다는 것! 또한 처음 어머니들이 만난 인연이 한 곳에 몰래 묻힌 두 여인 때문이었다는 것! 끝까지 독자만 알아야할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반전의 재미는 유주얼서스펙트급이 되어 소설이 단편이라는 사실마저 잊게 만든다. 

김연수, 박완서, 이청준, 이나미, 권지예,이승우, 윤후명, 조경란, 이명랑, 최일남 총 10명의 작가가 털어놓는 짧은 이야기들은 하나의 주제가 아니라 제각각인 이야기지만 그 속의 재미만큼은 공통분모처럼 여겨진다. 유머러스하거나 해학적이 아니어도 이야기는 충분한 재미와 감동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가들의 필체에서 찾아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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