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하성란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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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들여 진다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뜻과 같은 것일까?

시즌이 거듭되지만 여전히 질리지 않고 보고 있는 한 미드에서 매맞는 아내가 결국 살해되는 이야기를 접하며 나는 딜레마에 빠졌다.  매일 매를 맞는 고통과 업수이 당하는 인격적 모독뿐만 아니라 생명의 위협까지 가해지는 가정은 이미 가정의 역할과 구실을 망각한 공간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을 때린 남편을 용서하다 결국 칼에 찔려 죽은 여인은 남편에게 길들여졌던 것일까. 매맞는 것에 이골이 난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매맞는 일은 결코 길들여지는 일이 아니다.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를 읽으며 분기탱천했던 까닭은 힘없는 자의 마지막 소리마저 막아버린 ㅏ가진자들의 억압과 폭력성 앞에 우리 사회는 너무도 헐겁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헐거운 사회. 묵인되고 묻혀지며 진실이 규명되지 않는 사회에  한 구성원으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그 순간 너무나 부끄러워졌기 때문이었다. 
 
작가 하성란의 소설 [A]는 그런 외부적 우리의 시선을 멀리하고 그 반대의 사람들의 인생을 담고 있어 시각을 넓혀주었다. 앞서 언급했던 미드나 한 여류작가의 소설이 분노케했던 것과 달리 [A]는 드러난 사건의 충격적인 실태와는 달리 평온하게 시작해서 평온하게 끝난다. 평탄한 이야기를 담았다는 뜻이 아니다. 신흥종교 교주, 공동체 생활, 아비없는 아이들의 출산, 여성의 성접대, 노동력 착취에 이르기까지 문제 삼자면 긁어낼 구석이 많은 이야기에 대해 부지깽이로 쑤셔대고 있는 형국이라 말많고 탈많고 틀림없이 논제가 될 여지가 많은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소설은 화자를 누구로 두느냐에 따라 좀 더 편안한 시선으로, 뉴스 1면에 미주알고주알대는 것을 피해 그 속에서 그 환경을 당연시 여기며 자라난 맹인 여인이 화자가 되어 바라보게 만든다. 생각보다는 편안한 시선으로.

공동체 생활. 여사장을 "어머니"라 부르고 아버지는 없는 환경. 아침 저녁으로 점호를 받고 사유재산이 인정되지 않으면서 모든 수익은 여사장 한 사람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김일성식 이익분배법에 불만이 없는 땅. 신흥종교 교주로 세간에 알려지며 여성들의 집단 자살로 사회를 충격으로 몰아넣은 곳. 

이곳에서 나고 자란 여인은 궁금한 것 반, 편안한 것 반으로 추억을 되새김질 해댄다. 그래서 그녀의 추억이 묻힌 사건은 끔찍한 비명을 가까스로 피해갔다. 열 아홉의 감수성 물씬 풍기는 나이에 서서히 시력을 잃어 앞을 볼 수 없는 상황에 함께 생활하던 엄마와 이모들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한 사람씩 죽어가는 소리를 들으며  혼자 살아남는 공포를 겪어야했던 그날의 일에 이르기까지. 

A는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이토록 끔찍한 상황속에 독자들을 몰아넣고 있는 것일까. 평범한 우리들이 사는 곳과는 너무나 다른 개념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결국 그 곳도 사람들이 살아가던 곳이었다. 사회와 격리된 그 울타리 안에서 그 땅의 규칙이 삶이 규칙이되고 그 땅에서의 일과가 행복하다고 여기며 살았던 여인들. 일곱명의 여인이 각각 이곳에서 열 일곱을 낳았다. 그런데 결국 신신양회는 24명의 집단자살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죽고 나서 묻힌 것은 시체뿐, 그 나머지는 세상에 다 까발려진 채 아이들을 흩어지게 만들었지만 결국 그땅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는 그들에게 땅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리움, 추억, 새로운 시작을 담보로 그들은 저주의 땅을 약속의 땅으로 일구어보려고 했지만 앞세대처럼 그들 역시 무너져버렸다. 실타래풀리듯 하나씩 풀어나가는 가운데, 중간에서 얽히지 않고 술술 쉽게 설명되어지며 그들이 살았던 삶을 되집어 보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했을까? 혹은 그랬기 때문에 행복할 수 있었을까?

어느쪽으로 질문을 붙여야할지 참 난감해지는 상황이다. 이 비슷한 사건들이 몇몇 나라에서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아마 있었을 것이다. 다른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공동체 생활의 몇몇 규칙들을 제외하면 딸이 바라보는 엄마의 일상은 여느 워킹맘의 일상같다.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들의 사연에 젖어들어갈수록 그렇게 살아보지 않은 우리에게 소설은 충격덩어리를 삼키게 만든다. 

P.52 엄마는 겨우 마흔한살이었다. 아직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나이였다. 

딸은 먼저 가버린 엄마에 대한 애잔함을 이렇게 읊조리고 있었다. 그러나 내겐 그곳의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보인다. 좀 더 다른 삶을 꿈꾸면 안되었던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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