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차일드
김현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저녁뉴스를 통해 세상이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을 또 한번 절실히 느끼고 좌절했다. 부모님이 아무리 엄하기로서니 자신들이 낳은 아이를 집근처 화단에 살해해 묻어버릴 수가 있는 것일까. 동정이나 이해에 앞서 그들은 그 순간 인간으로서 느껴졌을 공포심은 어디로 감추었던 것일까.

 

생명에 유통기한이 있을리 만무한데 노령화 사회는 없던 유통기한도 만들고 있는 듯 했다. 살아있는 것들을 위해 죽어가는 것들을 폐기해야 한다는 판결이 멀지 않은 미래에 있을 것만 같아 날로 늙어가는 몸이 시한폭탄같이 무섭게 느껴진다.

일본 소설가 야스타카의 [인구조절구역] 역시 신고려장에 관한 이야기다. 다만 [러브차일드]는 노인에 국한된 것만이 아닌 국가에서 의료폐기물로 정하는 순간 사라져야하는 운명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공식적으론 "60"이라는 나이는 폐기되어야 할 나이로 그려지지만 실제나이와는 상관없었다. 권력층은 자신들의 나이마저도 영원히 늙지 않는 30대에 머물게 만들고 서민들만 탄로가를 부르며 늙음을 서러워해야하는 것은 지금이나 진배없는 모습이어서 떨떠름하다. 가난이 죄는 아닐진데, 세상은 언제나 가난해서 손해보게 만든다.

 

노인학대? 폭력적 산아제한?  속에서도 저항하는 사람들은 꼭 있게 마련이어서 [러브 차일드]가 보여주는 세상에서도 불의에 저항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바위로 계란깨기처럼 그들의 힘은 뭉쳐도 솜사탕처럼 바스라질뿐이었다. 불평등한 신고려장앞에서 분리수거된 늙은이들은 의료폐기물일 뿐이었다. 그래서 읽는내내 귀에서 레퀴엠이 떠나질 않았나보다.

 

마주하기 불편했던 진실은 저녁내내 좌절하게 만들었던 뉴스기사처럼 충격적이었고 생명을 버리는 일이 이처럼 가벼이 여겨지는 세상이 오게 될까봐 걱정하게 만들었다. 소설일뿐이라고 치부하기엔 현실은 너무나 비슷해져가는 것처럼 느껴졌고 이들의 이야기가 언젠가는 우리의 이야기가 될 것만 같았다. 그 언젠가는이 언제올지 모른다는 점만 빼놓고.

 

쓰레기에 의한

쓰레기를 위한

쓰레기의 소설이라니...

 

비유적, 현실적,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현실들에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소설은 가히 첫문장부터 충격적이긴 했다.

 

"우리가 세상에 나와 가장 처음 본 것은 난도질된 우리의 몸이었다"

 

마치 낙태를 바로 떠올리게 만든 한 문장은 이어 계속 우리를 인간이 아닌 그 무엇처럼 몰아갔고 생명을 잉태하는 것도 인간이지만 반대로 그 생명을 가벼이 버리는 것도 인간이라는 이중성을 자각하게 만든다. 육손인 25100431111,진,수가 꿈꾸던 선택하고픈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생명을 쓰레기 분리하듯 분리할 수 없듯 생명의 유통기한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멋지게 늙어도 좋다고 허락해줄 세상 속에서 늙어가고 싶다.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야할 세상은 이와 같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작가는 소설을 시작했던 것이 아닐까.

 

[자살에 대한 명상]이라는 책을 읽고 뒤이어 읽어낸 소설은 자살이라는 무거운 주제보다 한층 더 무거운 타살이라는 무게로 나를 찾아왔다. 신이 있다면 스스로 죽는 이도, 타인을 죽게 만드는 이도 안타까워했을 것만 같다. 늙어간다는 것이 소모된다는 것이 아님을 지혜와 경험치로 게임캐릭터처럼 눈으로 볼 수 있게 남겨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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