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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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요리사가 되겠다고 생각한 거니?

할머니와 삼촌과의 추억만이 가득한 지원에겐 부모의 추억이 없다. 하지만 없다는 것은 결핍이 아니라 요리에서의 무첨가 같은 것이었다. 대체 될 순 없으나 첨가 되지 않아도 맛에는 이상이 없는 그런 것. 그래서 지원은 잘 자랐다. 비록 성인이 된 지금 할머니는 돌아가셔서 곁에 없고 삼촌은 숙모의 죽음 뒤 알코올 홀릭이 되어버려 의료기관에서 살고 있지만 괜찮았다. 7년이나 동거했던 남자가 자신의 쿠킹 클래스를 들락거리던 전직 모델과 사랑에 빠져 그녀와 개 폴리를 버리기 전까지는.

그의 개 폴리와 그의 여자 정지원은 어느날 나타난 이세연으로 인해 버려졌다. 한석주는 그렇게 그들을 떠나갔다. 서른 셋의 여자는 스물 일곱의 여자에게 제 남자를 빼앗기고선 스물 아홉까지 머물던 레스토랑 노베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맛을 그리고 요리를 만드는데 전념할 수 없었다.

"끝낼 수 있을 때 더 시간 끌지 말고 끝내. 지나고 나면 별 거 아닌게 돼" 라는 주변의 충고에도 끝났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살아지는대로 살고 있다. 무언가를 상실한 채.

대체 왜 요리사가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녀의 혀와 그녀의 혀!!

정지원의 혀는 가장 맛있는 것을 맛보는 기관이었다. 애인 한석주의 혀도 지원의 곁에선 그랬다. 그녀가 차려준 맛나는 음식들을 맛보고 칭찬하는 기관이었다. 하지만 석주가 사랑한 세연의 혀는 달랐다.

세연의 혀는 가장 맛나는 것들을 빼앗아간 혀였고 가장 소중한 그를 빼앗아간 혀였고 거짓말을 줄줄 내뱉는 혀였으며 마지막으로 누군가에게 복수의 일환으로 선물하기 좋은 재료였다.

십오년 간이나 애지중지 길러온 개를 새 여자가 싫어한다고 내던지고 가는 순간부터 어쩌면 훗날 새 여자가 개를 죽이는 순간이 올 수도 있을 것을 예감했어야 했다. 그는.결국 세연이 후라이팬으로 계속 때려 죽인 폴리의 사망소식을 전해들었을때 지원은 무언가 가슴에서 툭 끊기는 것을 예감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내일 이탈리아로 떠난다고 말하며 석주를 불러들였고 이제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며 안심시키고 요리를 내어놓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의 혀를 재료로 한 요리인줄로 모르고 맛나게 먹는 남자의 어리석음이란.

어쩌면 섬뜩하고 어쩌면 작의적이긴 해도 심리가 전혀 이해불가인 것만은 아닌 조경란의 "혀"는 마지막 순간이 오기전까지는 아주 서정적이다가 반전적인 결말에서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든다.

그녀의 혀와 또 다른 그녀의 혀는 다른 것을 맛보았다. 지원이 요리를 맛보는 사이, 지원의 남자를 맛보던 세연의 혀. 그래서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결말 앞에서 우리는 또 다른 카타르시스의 문전에 서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너무 사랑해서 남자의 성기를 잘랐던 [감각의 제국]의 주인공이나 사랑하고 맛보고 싶어 프랑스 애인을 회 떠서 두고두고 먹었다는 일본 미식가 남자의 이야기가 주는 끔찍스러움과는 확실히 다른 어떤 감정을 갖게 만든다.

그래서 소설은 가장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가장 자극적인 이야기가 되어 여전히 내 책상에 머무르고 있고 나는 이번 주 내내 책을 되씹어 읽으며 이 감각의 이름이 무엇인지 찾아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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