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에 살고 죽고 - 20년차 번역가의 솔직발랄한 이야기
권남희 지음 / 마음산책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밤의 피크닉],[달팽이 식당],[애도하는 사람]...120여 종 번역, 20년째 이어지는 번역가의 삶...


내겐 남들과 다른 코드가 존쟇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꼬맹이 시절엔 다들 만화를 신나게 볼때 나는 성우들의 목소리를 구분하는 재미로, 그들의 이름을 줄줄 꿰는 재미로 만화를 보았다. 그리고 좀 더 자라서 영화를 보게 되면서는 외화의 엔딩에선 꼭 번역의 이름을 찾아내곤 했다. 당시엔 대부분 "이미도"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어 그 이름이 번역하는 단체의 이름인가? 했을 정도였다.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코드나 습관은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번역이 잘 되어 있는 책을 보면 꼭 번역자의 이름까지 확인하곤 다음 책을 고를 땐 역자의 이름까지 책을 고르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너무 까다롭다 싶을지도 모르지만 원작이 같은 책이 세월의 틈을 두고 다른 출판사 다른 역자의 손을 탔을때 미묘하게 달라지는 그 분위기와 재미를 경험해 본 사람은 이 선택을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또한 1권의 번역은 누군가 했는데 그 책이 뜨고 나선 2권의 번역은 다른 역자에게 맡겼더니 책의 분위기가 변해서 읽기 싫어진 경우도 있었다. 역자의 역할은 알게 모르게 이토록 지배적일 정도인데 선호 브랜드처럼 좋아하는 역자의 이름을 꿰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적어도 습관이 이러한 내게는.


대구 출신 일본문학 번역가....


양억관, 김난주라는 이름이 주로 많이 보이던 일본서적 번역에 언제부턴가 생소한 역자들의 이름이 붙기 시작했다. 신뢰가 쌓인 역자들의 책을 먼저 고르는 가운데 [번역에 살고 죽고]의 저자 권남희도 포함되어 있다.  그녀의 번역에 매료되기 시작한 것은 매니아층이 두꺼운 작가 온다 리쿠의 번역을 그녀가 맡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나 [황혼녘 백합의 뼈],[불안한 동화],[어제의 세계],[밤의 피크닉]을 읽으며 작가와 역자의 이름을 염두에 두기 시작했다. 좋은 번역은 독자가 책을 읽을때 흐름을 방해하지않고 자연스럽게 작품속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 온 내게 그녀의 번역은 온다 리쿠 자신의 것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어서 몇 편의 시리즈를 부담없이 빠르게 읽어낼 수 있었다. 

나는 번역이 잘 되었니 오역이니 집어낼만큼 똑똑한 독자가 아니다. 그저 내가 글 읽는데 방해가 되는지, 보탬이 되는지만 겨우 판가름할 수 있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런 내게 번역가로서의 그녀의 일상은 마치 하나의 작품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즐거움을 안겨다 주었는데, 글의 감동을 전하는 사람인지라 그의 글솜씨도 예사 것이 아니었다. 

기본이 보장되어 있지 않은 프리랜서의 세계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끊임없이 일해 온 그녀의 커리어는 세월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집 밖으로 잘 나가지도 못하고 주말, 휴일 할 것 없이 일에 파묻혀 산다지만 부러울 따름인 그녀에게 번역은 이미 일상 생활이었다. 무엇보다 그 점이 부러웠다. 물론 그녀는 한 달에 400만원을 거뜬히 벌 때도 있고 [공부의 신] 경우에는 1000만원이 훌쩍 넘는 수입을 벌어들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조차 번역의 길을 적극 추전하지 않을만큼 어려운 직업이기도 했다. 읽으면서야 깨닫게 되었다.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불안정성을. 

그래도 이 순간 번역가가 되고 싶어 꿈꾸는 이들이 있을 것이다. 배움의 길이 뚫려 있지 못하고 딱히 성공의 길이 보장된 것도 아니지만 열정하나로,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두 팔을 걷어부친 젊은이들에게 이 책이 희망의 교본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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