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정육점 문지 푸른 문학
손홍규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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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내 생에 따뜻했던 날들]을 읽었을때와 마찬가지로 성장소설의 감동 사이로 유쾌함이 묻어나는 이야기는 오랜만이었다. 그 웃음은 즐거운 웃음이나 큰소리로 웃게 만드는 통웃음 따위와는 달랐는데, 쓸쓸하고 슬프지만 피식피식 웃게 되는 짧은 웃음을 의미했다. 

[이슬람 정육점]은 "하산"이라는 무슬림의 손에 의해 고아원을 나와 함께 생활하게 되는 한 소년에 관한 이야기다. 학교에서도 쫓겨나고, 고아원에서도 항상 문젯거리였으며, 나고 자란 사회에서도 버림받은 아이를 구원한 것은 이 땅의 누군가가 아니라 참전용사로 왔던 한 터키인이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부끄러워져야만 한다. 오늘날에도 상황은 그리 변했다고 말할 것이 없으니 말이다. 

"아들!아들"하며 아들을 낳아야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이 땅엔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국내 입양은 딸을 선호하는 추세라 아들들은 해외입양을 가게 된다고 했다. 태어나자마자 버려지는 것도 서러운데 타국으로 떠나야한다니......어린 아이들의 인생이 그리 서글퍼보일 수가 없다.  고아원의 아이들도 그랬다. 품어줄 부모들이 나타나거나 좀 더 혜택받으며 자랄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들의 멍든 상처는 사회의 시선과 부당한 대우들로 더욱더 멍들어 갈 뿐임을 소설에서 발견했을때 이 땅의 한 사람 어른으로서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했던지. 모든 어른들이 그런 것은 아닐진대도.

한국 전쟁 참전 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에 눌러살게 된 터키인 하산 아저씨와 빈대붙어 살고 있는 그리스인 야모스 아저씨, 안네양의 일기를 안내양의 일기인 줄 알고 살아온 안나 아주머니가 서로 이웃이 되고 가족이 되어 살아가고 있는 곳은 가난한 동네지만 훈훈해보이기도 했다. 그들의 일상은 없음에 슬퍼하거나 가난함에 좌절치 않고 하루하루의 일상이 그저 주어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소시민의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안나 아주머니가 뜻도 모르며 "옴마니밧메홈"을 버릇처럼 외우는 모습도 종합병원 세탁실의 세탁부로 일하면서 온갖 거짓말들을 늘어놓고 사는 야모스 아저씨의 모습도 웃음을 유발하기에 적당했다. 하지만 이들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얼굴에 버짐이 피고 머리에 기계충 자국이, 몸에 온갖 상처와 흉터가 가득한 사내아이를 사랑으로 대하고 가족처럼 아꼈으니.......

귀머거리처럼 행동하고 무슬림이면서 정육점을 운영하며 소년을 구체 관절 인형처럼 다루는 무뚝뚝한 하산 아저씨조차도 소년에 대한 따스한 마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래서 소년의 입장에서 소설은 따뜻한 성장기가 된다. 

우리 삶에서 의례적으로 통과해야 할 일이란 없고 지금 우리가 통과하는 곳이 삶의 한복판이라고 말하던 하산 아저씨가 떠나는 순간만큼은 그래서 소년에게 통과해야할 일이 아니었을까. 살아서도 매번 이별하는 사람처럼 아득하고 쓸쓸했던 모습의 아저씨를 떠나보내며 소년은 마지막 말을 붙인다. 

"제 말 들으셨어요? 사랑해요.....사랑한다구요."라고.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살지만 다르다고 탓하기보단 같은 것을 찾아내려고 애쓰기보단 그 자체의 모습을 인정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이슬람 정육점]은 생각했던 내용과는 다른 이야기였지만 그만이 가진 감동으로 충분한 만족감을 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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