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 패밀리즈
아즈마 히로키 지음, 이영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일본소설을 읽다보니 귀에 익은 상명들이 있는데, 아쿠타가와 상, 야마모토 슈고로상, 나오키상, 다니자키 문학상, 다카미 준 상, 미시마 유키오 상이 바로 그들이다. 그 중 1970년 12월에 타계한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를 기념하기 위해 1988년부터 신조사의 주최로 주어지고 있는 미시마 유키오 상은 신인작가의 작품을 주로 선정하고 있는데, 수상작이 없었던 5회를 제외하곤 매년 꾸준히 좋은 작품들을 칭찬해 오고 있다. 그 중 2010년, 최근에 따끈따끈하게 뽑힌 작품이 아즈마 히로키의 [퀀텀 패밀리즈]다. 

그동안 오타쿠 문화 비평가였던 아즈마 히로키의 첫 장편은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며 세상에 나왔는데 전혀 다른 세상 속, 전혀 다른 삶을 다루는 소설인만큼 읽고나서도 여전히 종잡을 수 없는 무엇들이 머릿속을 부유하고 있는 것처럼 혼란스럽기 그지 없다. 

작품의 매력이라고도 할 수 있는 수수께끼는 끝까지 풀리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어느 쪽이 진실이든, 모든 사실이 진실이든 간에 헷갈릴 수 밖에 없는 구조로 진행되면서 산업의 발전이 과연 인간에게 축복이기만 한 것일까?를 고민하게도 만들고 있다. 

서른 다섯의 유키토에게 어느날 도착한 한 통의 메일. 1년 반 전에 태어났다는 "미래의 딸"이 보낸 편지는 장난처럼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2035년으로부터온 이 메일 한 통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버렸다. 

다른 세계에서 다른 얼굴의 가족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받아들여야 하는 진실일까. 거부해야만 하는 진실일까. 그 선택권조차 유키토에게 주어지지 않은 채 타임 터널은 그와 후코를 만나게 만든다. 2008년 3월, 아버지의 죽음으로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채 성장했던 후코와 또 다른 가정의 자녀인 오시마 리키의 만남! 오시마 리키는 가정내 강간으로 출생했다. 그렇기에 한 자녀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으로 또 다른 자녀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키웠을 것이 분명한 가운데 시간의 터널 어딘가에선 생존해 있는 유키토는 기억에도 없는 자신의 과거와 미래를 마주하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했을까. 

유키토에게 다른 가족이 존재한다는 건 남자로서의 삶에 축복일지, 재앙일지 판단하기 어려운 가운데 소설은 계속 "이상한 나라의 폴"이 시간을 넘나드는 것처럼 혼돈을 야기시키며 미래를 헤집고 다니게 만들었다. 덕분에 독자도 함께 시간탐험대의 보이지 않는 일원이 되어 줄곳 따라다녀야 했는데, 소설 속 인물 중 한 명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토록 고맙게 느껴지는 소설을 만난 것은 태어나서 처음있는 일이었다. 독자라는 사실에 순간순간 얼마나 감사함을 느꼈는지......!

2007년에 시작되어 2007년으로 되돌아오는 도돌이표 소설인 [퀀텀 패밀리즈]는 "시간 여행자의 아내"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낭만과 환상을 묻혀오기 보다는 그 여행 속에서 하나의 깨달음을 선물로 전해주었는데 그것은 현재 주어진 시간에 대한 감사였다. 

영화도 나온 바 있는 "평행이론"이나 "평행세계"가 실제로 가능한 가설일지 나는 잘 모른다. 찬성도 반대도 할 수 없다. 하지만 내일 닥쳐 올 일을 미리 알기 보단 오늘을 열심히 살아 내일을 만들어가는 평범한 삶의 주인공으로 남고 싶다. 퀀텀 패밀리즈를 읽으며 재차 확인한 선택은 지금의 삶이면 충분하다는 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