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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녘 백합의 뼈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보리의 바다에 가라앉는 열매]의 끝에 리세는 학교를 나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언젠가는 학교라는 왕국을 물려받기 위해서 돌아오겠지만 우선 그녀는 2월의 아이가 되어 학교를 떠나간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처음 들어올 때와는 다른 여유가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안다는 것. 그리고 돌아올 그곳이 여왕님인 그녀의 왕국이라는 것.
그것을 알기 때문에 불안하거나 망설임이 없다.
그런 그녀의 발걸음은 어디를 향해 있는 것일까.
[황혼녘 백합의 뼈]에서는 14살의 그녀와 이별하고 16살의 그녀와 마주칠 수 있다.
잃은 기억 속에서도 어렴풋한 할머니와 두 오빠의 기억. 이젠 그녀의 기억속이 아닌 현실 속으로 들어가 볼 수 있다. 다만 할머니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내가 죽더라도 미즈로 리세가 반년이상 이곳에 살기 전에는 절대 집을 처분해서는 안된다"
라는 할머니의 유언과 그녀에게 남겨진 "마녀의 집".
리세는 학기중간이지만 영국에서의 학기와 일본에서의 학기를 포기하고 할머니의 집에 머무른다. 물론 혼자는 아니다. 할머니의 집에는 할머니의 재혼으로 생긴 할머니의 두 딸과 두 사촌 오빠가 있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리세는 조심해야 한다.
기억이 돌아온 이상 그녀는 알고 있다. 모두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가 거짓말쟁이라는 것을 레이지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젠 알게 되었다.
등장인물이 하나씩 늘어가는데도 전혀 혼란스럽지 않을만큼 잘 정리된 플룻을 자랑하는 작가가 바로 온다 리쿠이다. 그녀의 글은 잘 정돈되어 있으면서도 비밀스럽게 포장되어 있다.
절대 한꺼번에 설명해주지도, 보여주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독자가 주인공이 되어 함께 풀어갈 수 밖에 없도록 미스테리한 장치들을 글 곳곳에 심어 두었다. 범인만을 궁금해 하는 것이 아니라 전편에서 처럼 리세가 이 집에서 과연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궁금해진다. 살인사건이나 실종사건은 그 뒤의 문제인 것이다.
리세는 이 곳에서 할머니의 유언을 지켜야 한다. 반년동안 이곳에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또한 할머니의 주피터도 찾아내어 없애야만 한다. 백합 향이 그윽한 이 마녀의 저택에서 그녀는 과연 주피터를 찾아낼 수 있을까.
그리고 그녀를 도와주는 쪽과 방해하는 쪽은 어느 쪽일까.
천박하기 그지 없는 리야코 쪽? 아니면 꽃꽃이를 하는 고상하지만 알 수 없는 리나코쪽?
순진하지만 이상한 행적의 와타루 쪽? 뒤늦게 등장하지만 같은 색을 가진 미노루 쪽?
비밀을 공유하는 쪽이 믿을만한지, 감추고 있는 쪽이 믿을만한지 결말을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다. 그것이 궁금해서 책장은 빨리 넘어가고 호흡은 가빠진다.
나는 이 시리즈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번역본이 어디까지 들어온 것인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끝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이 숨막히는 레이스가 제발 끝나지 않기를.
작가를 쫓는 독자의 흥미로움이 이어지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