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3 - 미천왕, 낙랑 축출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1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주말저녁 빠짐없이 시청중인 [명작 스캔들]의 "브뤼헬 & 세비야의 이발사편"에서 김정운 교수는 "시선이 권력"이라는 말을 한 바 있다.  그 쓰임은 다르지만 작가 김진명의 최근작 [고구려]에서 을불은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자신의 위치에 따라 이전보다 더 어려운 선택에 고심한다.  [태왕사신기]의 임금님이 도망자가 되었다가 역경을 이기고 신물을 모아 왕이 되듯 을불도 핏줄의 죽음을 담보삼아 왕재의 길을 향해가는 처절한 운명의 주인공이었다.  이윽고 고구려 제 15대왕인 미천왕이 되지만 왕이 되었다고 모든 일이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었다. 정말 힘든 결정들은 왕이 되고 나서야 시작되는 일들이었으므로.

제갈공명같은 지략이 뛰어난 신하인 창조리를 얻었으나 충직한 장군 고노자를 잃었고, 정세와 처세에 밝은 주아영을 베필로 얻었으나 이 일로 결국 단아한 소청을 죽음으로 밀어넣게 되었다. 나쁜 일은 손수 맡아주는 아달휼도 곁에 두었고 왕이 되어 백성들을 위해 좀 더 많은 것들의 결정권을 쥐게 되었지만 미천왕은 언제나 전장 속에서 살아가야하는 인물로 그려져 있다. 

난세에 난 영웅은 그렇게 전장을 떠나지 못하고 살아야하는 팔자라도 타고 태어난 것일까. 다가올 천년을 결정짓기 위해 낙랑을 멸하고 말리라!!고 다짐한 미천왕과 낙랑의 최후를 위해 살아온 왕비 아영. 세 권으로 15대 미천왕의 이야기는 종결지어졌지만 아직 20대 장수왕까지의 이야기가 남았으니 나는 앞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고구려의 다음 왕들을 기다리게 될 듯 싶다. 

삼국지 라는 게임이 있고 만화가 있고 영화가 있듯이 고구려 역시 만화는 물론 게임 시나리오로 꾸며져도 훌륭하다 싶을 정도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만약 고구려가 온라인 게임화 된다면 나는 계정을 끊어 매니아로 남아버리게 되지 싶다. 전세계적으로 타국의 젊은이들이 고구려의 역사에 익숙해지도록 이보다 더 좋은 전략이 또 어디 있을까. 

힘의 역사, 대륙의 역사, 포효하는 역사의 울림을 잊고 살아온 우리네 삶에 작가는 또 하나의 경종을 울리고 있다. 뜨거운 애국심을 상기시키면서 - .

역사소설의 무한 감동은 그가 왕이 되어서가 아니라 왕이 된 그가 훗날의 초석이 될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우는 것에 독자로 읽음으로써 함께 참여하고 있다는데서 두근거림과 함께 시작된다. [고구려]는 읽는 내내 끊임없이 변방의 북소리를 귀로 듣는 환청에 시달리며 읽어내야 했던 소설이었다. 빠르게 읽혀지지만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무게감을 가진 소설, 고구려.

왕업을 이룰 군자금을 숙신의 백성에게 퍼주고, 고노자가 쳐들어왔을 때 장졸들의 가족이 고구려에 있음을 먼저 걱정하는 군왕이 있던 나라. 따뜻함으로 이기는 길을 열었던 왕이 지켜내었던 그 땅.  인간의 길을 먼저 가르쳤던 조상의 자손임을 깨닫게 만드는 소설이야말로 역사소설로써의 진정한 가치를 지닌 소설이 아닐까 싶다. 

낙랑 축출을 마지막으로 미천왕 편이 마쳐졌지만 빠른 속도로 다음 권을 집필하고 있을 작가의 손에 날개가 돋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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