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읽기에 적당한 계절이란 따로 없다고 평소에 생각했었는데, [아가미]만큼은 그 생각이 틀렸던 것 같다. 봄엔 햇살이 좋아서 밝은 햇살아래서 책읽기 적당하고, 여름엔 시원한 먹거리들이 있어서 에어콘 바람 아래에서 탐독할 수 있어 좋고, 가을엔 독서의 계절이란 타이틀을 굳이 갖다 붙이지 않아도 모든 면에서 책읽기를 위한 계절인 듯 했고, 겨울엔 따뜻한 이불 아래에서 배를 깔고 고구마를 까먹어가며 읽는 책의 맛을 알아갈 수 있어 좋았는데, 각 계절 별로 딱히 읽기 적당한 책이 따로 존재하지 않을 듯 했다. 적어도 [아가미]를 만나기 전까지는.

 

[아가미]. 외국영화에서처럼 통나무로 지어진 선착장 끝머리에서 발을 바닷물에 담그고 한 여름의 햇살 아래, 커다란 밀짚모자를 쓴 채 읽어야 제맛일 것 같은 소설. 비릿한 바닷내음을 맡으며 혹은 발장구에 혼탁해지는 강물에 발을 동동거리며 읽어야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하며 상상을 덧붙일 수 있을 것 같은 소설이 바로 아가미였다.

 

나는 소설을 읽어가며 중간중간 멈추기를 반복했다. 아주 얇은 책이었고 별다르게 이어읽기를 방해하는 문장도 없었지만 그래야 했다. 천천히 읽기를 권한 소설가 윤이형의 덧붙임 말 때문만은 아니었고 그저 읽다가 상상이 펼쳐지는 문장 아래에선 책읽기와 상상을 병행할 수 없었기에 잠시 눈을 감고 이야기가 이끄는 상상의 세상을 맛보곤 했다. 그래서 읽기는 다소 느려졌지만 나는 너무나 만족스런 책 읽기를 끝낼 수 있었다.

 

너무 꼬맹이 시절 본 영화라 처음 극장에서 엄마손 잡고 갔던 그 때가 잘 기억은 나질 않는 영화 [E.T]는 다르지만 함께 했던 꼬마 외계인과 지구 아이들의 우정과 마지막 하늘을 나르는 자전거 씬이 감동적이었던 영화였다. [아가미]와 [E.T]는 그런 맥락에서 같은 흐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세상에 알려지면 분명 실험대상이 될 것이 뻔한 존재를 숨겨주며 함께 하는 이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다르지만 틀리지는 않은 어느 특별한 존재에 대해 결국엔 소중함과 사랑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표현하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표현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느낌들이 있다. "고기새끼"라며 험한 말로 상처주는 듯 해도 강하에게 곤은 책임지고 자립시켜야할 보살필 존재였고 그래서 엄마의 죽음에 슬퍼하기 보단 증거를 조작해서라도 곤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우선이 되었다.

 

스타가 되고 싶어 외할아버지에게 자신을 택배보내듯 보내버린 엄마를 잊고 외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강하가 등과 허리에 불규칙하게 비늘이 돋아나 있는 "곤"을 구해내면서 함께한 세월은 짧게 주어진 그의 인생에 어쩌면 가장 행복했던 한 때가 아니었을까.

 

자살호 혹은 유령호로 불린 이내호 근방에서 살던 세 남자가 뿔뿌리 흩어져 마지막에 찾아온 여자에 의해 강하와 할아버지의 소식을 접하기 전까지 그들은 떨어져 있지만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이었다. 하지만 둘의 죽음을 전해듣는 순간 곤의 내일은 정해져 버린 듯 했는데, 그가 찾는 것이 정말 그들의 시체인지, 행복했던 과거의 자락인지, 어쩔 수 없는 그리움의 한 끝인지 짐작해내기란 어렵다. 어쩌면 몽땅 다 일 수도 있는 그들을 찾기 위해 오늘도 잠수하고, 또 잠수하는 그에게 붙어 있는 아가미란 다름의 증거인 동시에 특별한 어떤 것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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