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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증명 - 합본판 ㅣ 해문 세계추리걸작선 29
모리무라 세이치 지음 / 해문출판사 / 2011년 3월
평점 :
품절
자기 보존의 주판을 두드렸던 것일까....
[로열패밀리]는 빠르고도 강했다. 그저 재벌집의 암투나 신데렐라형 여성의 성공기를 보여주고 끝날 것 같다는 예상을 뒤엎고 빠른 전개와 함께 펼쳐지는 비밀을 추리해나가는데 정신이 쏘옥 빠질 정도다.
누구 앞에서는 겁에 벌벌 떠는 여자처럼, 누구 옆에서는 힘없는 여자처럼, 하지만 누군가의 뒤에서는 그의 생명을 노리는 이가 되어 착한 여인에서 점점 인간의 본성을 향해 치닫는 여인으로 변모하는 k.
드라마의 인기와 더불어 원작이 있다는 말에 모리무라 세이치의 [인간의 증명] 합본판을 읽기 시작했다. 제목부터 무게감을 더하는 이 소설은 로열패밀리가 정가원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권력의 암투부터 보여주는 것과 달리 동양인의 외모에 가까운 젊은 흑인 청년이 이방인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로열 호텔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으로부터 출발한다.
전혀 다르게 보이는 원작과 각색작을 두고 어느 것이 더 재미있다를 논하는 것은 이미 어리석은 일이 되어버렸고 [인간의 증명]에선 여러 사람의 실종과 죽음이 얽힌 가운데 인간 본성에 대한 호소력으로 제 3회 가도카와 소설상을 수상한 작품의 저력을 뿜어내고 있음이 한문장, 한문장에서 증명되어지고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기로 했다.
"사람을 증오하고 있는 사람"인 무네스에 고이치로는 어린 시절 젊은 남자와 도망간 어머니 탓에 아버지의 손에서 길러진 남자다. 그는 미군에 의해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의 최후를 보며 사람에 대한 증오를 키우게 되었는데 그런 그가 이 사건을 쫓게 되었으니 어쨌든 그 결말은 끝까지 파헤쳐지리라는 것이 극명해지고, 변사체로 발견된 흑인의 물건처럼 보이는 낡은 밀짚 모자와 시집을 기초로 일본과 미국의 형사들은 공조수사를 펼쳐나가면서 그 방향은 점점 야스기 교코를 향해가고 있었다.
야스기 교코. 43세라는 나이를 무색하게 만들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인 그녀는 정치가의 아내이자 가정문제 평론가지만 제 아이들의 단속에는 실패한 사람이다. 그런 그녀에겐 외도하는 남편과 문제성 있는 자녀들을 인내해낼만큼 안정되고 보장된 삶을 위협하는 그 어떤 것에 대해 공격적이 되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할까. 지탄해야할까.
p.33 자기 희생을 외치는 사람일지라도 마음 한 구석에는 자기 보존의 주판을 숨기고 있다.
그녀는 정말 자기 보존의 주판을 두드렸던 것일까. 자신의 아들인 조니 헤이워드를 죽인 사실이 밀짚모자와 시집, 그리고 곰인형으로 밝혀지는 가운데 야스기 교코를 욕망에 진 불쌍한 인간으로 이해해야할지, 아들을 죽인 비정한 어미이자 악녀로 이해해야할지의 딜레마에 봉착해버렸다.
"어머니, 내 그 모자 어찌 되었을까요?"라는 사이조 야소의 시 한편이 20년 후 대작을 쓰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밝힌 저자의 후기를 마지막으로 읽으며 나는 여전히 품고 있는 의문을 또 다른 사람에게 책을 권함으로써 넘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