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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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성은 타고나는 것일까, 길러지는 것일까. 
[7년의 밤]은 악마성을 대변하는 한 인간으로 인해 재수없게 우연히 그와 연결된 사람들이 파멸해가는 비밀이 담긴 소설이다. 

처음 소설의 제목을 입으로 되뇌어 보면서 참 평범하다 느꼈다. 하지만 제프리 디버가 [블루 노웨어]에서 말했던 것처럼 철자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7년의 밤이라는 제목은 소설을 읽고나면 전혀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7년후, 7년전 혹은 7년 동안이라는 제목이 붙여져도 좋겠지만 7년의 밤이라는 제목은 그 모든 것을 대변하는 제목이기 때문이다. 

7년이라는 세월 안에 누군가는 쫓겼고 누군가는 기다렸고 누군가는 살아있었다. 

p. 나는 내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

로 강인하게 시작되는 문장은 그간 숱하게 봐온 수많은 작법서에서 일러온 충고처럼 "첫문장부터 사로잡는다". 두 눈을 뗄 수가 없다. 아버지의 사형집행인이었다니....이 뒤로 이어질 문장은 전혀 긍정적인 요소를 던져주지 않을 것임을 감안하고 읽어나가야함을 독자에게 암시하면서 소설은 2004년 9.12일 일어난 세령호의 재앙을 이야기했다. 

열두살 서원의 아버지는 퇴직선수다. 부상으로 야구를 그만두게 된 그는 술로 세월을 살다 생활력 강한 악착같은 아내와 아들과 세령댐의 보안팀장으로 내려오게 된다. 온 마을에 세령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고 소유주의 딸 이름 또한 세령이지만 가족이 이사오기 전에 소녀는 살해된다. 서원의 아비에 의한 사고사였지만 사실 소녀를 죽음으로 몰고간 것은 그녀의 아버지이자 마을의 유지인 연제다. 

치과 개업의인 그는 악마성이 내재된 인물로 아내를 향해 퍼붓던 폭력을 딸에게 행하고 있는 짐승이었다. 아내가 프랑스로 도망가 이혼소송과 양육권 소송을 시작하자 그는 딸을 대상으로 아동학대를 행하지만 경찰조차 눈감는 마을에서 소녀를 구하기 위해 나서는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댐경비였고 아비에게 죽도록 맞던 소녀를 병원으로 데려가고 오갈데 없어진 소년을 맡아 길러준 승환만이 진실을 파헤쳐 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사건은 일어났다. 

세령과 영제, 서원의 어미를 죽인 범인으로 몰린 서원의 아비가 사형언도를 받으면서 마치 원죄처럼 어느 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서원은 양육비 명목으로 유산만 가로챈 채 친척들로부터도 버려진다. 살인범의 자식도 살인범인 것일까. 그 죄가 대물림 되는 유전자를 가진 것도 아닐텐데 세상은 소년에게 너무나 냉정한 곳이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에서처럼 가족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한 이들의 슬픔은 어디에 하소연하고 풀어내야 하는 것일까. 

세상의 몰인정함 앞에 상처받아온 서원이 7년이 지난 시간에 이르러 이제껏 승환이 완성해온 소설을 읽게 되면서 사건의 진실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는 순간 우리는 사실과 진실 사이에 있는 것들을 깨닫게 된다. 사실과 진실 사이에는 "그러나" 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결코.

미치광이 살인마라는 오명을 아비에게 씌운 채 버젓이 살아 서원을 노리고 있는 인물이 드러나면서 서원은 이제껏 세상에 존재했던 이유들을 하나씩 맞추어 나가게 된다. 

p.29  세상을 사는 힘 아니, 자살하지 않는 비결....

열두살 이후부턴 호의적이지 않았던 세상과의 싸움에서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곁에서는 승환이, 세상의 다른 곳에서는 아비가 함께 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악마와 마주치는 운명의 날이 다가왔고 그는 살아남았다. 아비의 소망처럼.

한국문단에도 이토록 강력한 문체로 독자를 사로잡는 작가가 있었다. 부끄럽게도 이제사 그녀의 소설을 알게 되었지만 소설이 전하는 강렬한 메시지는 한 세기가 흘러도 절대 잊혀지지 않을 것만 같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기 시작했다. 소설의 처음과 끝, 등장인물들, 사건, 진실, 공감과 공명의 순간, 마지막 파장에 이르기까지 어느 한순간도 떨림 없이 떠올려지지 않는 부분들이 없었다. 드라마보다는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이 더 어울리겠다 싶어지는 영상들이 마치 이미 찍어놓은 영상물인양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이토록 강한 흡인력으로 쓰여진 소설을 과연 올해 안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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