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호텔
김희진 지음 / 민음사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어나서 한번도 가족이 생일을 챙겨준 적이 없다고 징징대던 녀석이 있었다. 멀쩡하던 녀석이 술만 들어가면 생일타령을 하며 징징대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싫을 수가 없었다. 20살 넘은 남자의 상처가 너무나 피터팬틱해서 오히려 실망스러웠달까. 녀석을 좋아하던 후배도 그 모습에 콩깍지를 떼버리고 해서 이후 소식은 알 수 없게 되었지만 묘하게도 [고양이 호텔]을 읽으며 징징대던 녀석의 모습이 떠올랐다.

 

기억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창고여서 생각지도 못했던 것들을 수면화 시켜버린다. 때때로 이런 것들이 즐거운 추억으로 기억될때도 있지만 아무것도 아닌 기억 하나를 끄집어냈다가 불살라버리는 느낌이 들때도 있다. 오늘처럼.

 

오버랩되던 녀석의 기억이 불살라지고 그 자리에 남겨진 것은 작가 고요다 였다. 본명 김희진. 그녀는 부부동반 사고사처럼 자살한 유명 소설가의 딸이며 얼마전 화려하게 등단한 작가다. 하지만 하늘의 별따기처럼 인터뷰가 어려워 인터뷰어인 강인한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유럽의 성같은 그녀의 집으로 찾아오고 쫓길뻔한 순간 저질 체력의 도움을 받아 무사입성하게 된다. 절대함락될 것 같지 않은 요새처럼 닫혀있던 고요다의 집은 총 11개의 방이 있는 3층짜리 성으로 그 안에는 그녀와 저마다의 숫자가 붙여진 고양이들이 동거하는 공간이다. 가끔 들리는 남자 하나를 제외하곤.

 

7월 7일. 그녀의 생일인지도 모르고 왔던 남자 "나나"는 9년간 만나온 섹스파트너다.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중요하지 않은 까닭은 오늘의 방문이 마지막이기도 하거니와 그는 곧 더 젊고 싱싱한(?) 나나로 교체될 인물이다. 그래서 유부남이자 선생인 남자의 방문은 그다지 중요한 포지션이 되지 못했다. 그보다는 머물러 있게 된 남자 인한은 몰래몰래 그녀의 삶을 훔쳐보며 인터뷰거리들을 모아가던 중 그녀 자체에 매료되면서 비밀에 한발자국 다가선다.

 

그날은 그런 날이었다. 요다의 생일이자 9년째 섹스파트너와 이별한 날이며 새로운 남자가 머문 첫날인 동시에 단골 베이커리 주인이 사라져버린 날. 사실 마을에서 실종된 사람은 그가 처음이 아니었다. 연쇄실종사건이 일어난 가운데 제빵사는 밀실이 된 욕실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베이커리에 새로 나타난 어린 고양이 한 마리. 익숙한 듯 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온 요다를 바라보며 인한은 그녀의 외로움을 읽어낸다.

 

기습은 이제부터다. 어느 이름모를 뚱땡이녀가 등장해서 요다와 인한을 가두고 그녀의 집을 몽땅털이 해 가는 사건이 일어나고 그날 인한은 요다의 과거이력을 듣게 된다. 그리고 이제껏 마을에서 사라진 사람들이 모두 고양이가 되었다는 것도. 끝까지 이 사실만은 진실인지 아닌지 명백히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돌아간 인한이 잡지에 기고한 인터뷰는 의리를 지킨 그의 창작품이었다. 전혀 사실이진 않지만 모두에겐 진실로 읽혀질 그의 인터뷰 내용.

 

그 인터뷰 내용의 달콤함 때문에 요다는 조금쯤은 행복해졌을까. 엄마의 유작 [뒤꿈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소설을 구상하면서 그녀의 일상은 어느새 평범한 옛 일상으로 돌아가 있었다. 고양이 호텔은 그렇게 요다만의 성으로 남아 세상으로부터 여전히 지켜지고 있었고 소설은 이제 닫혀진 그녀의 소통 수단으로 남아 더이상 요다를 쓸쓸한 성의 공주님이 아니게 만들어 주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