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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 장정일의 독서일기 ㅣ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 1
장정일 지음 / 마티 / 2010년 8월
평점 :
밥먹듯 읽어오던 책들을 리스트화 해 본 것은 꽤 오래됨직한 습관이지만 노트를 통해 리스트화 했을뿐 인터넷 상에 올릴 생각을 해 본일이 없었다. 그러다 삼년쯤 전부터 서평을 써써 올리기 시작하면서 읽은 책들이 예금처럼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는데, 작년에 읽었던 책들을 둘러보니 그 양이나 서평의 내용은 둘째치더라도 내 독서가 특정장르에 머물러 있음이 눈에 띄였다.
소설/취미생활북/역사 쪽에 편중되어 있는 편식독서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게 에세이나 과학,어학,사회,경제 서적들을 외면하고 있었나 싶어져 2011년에는 좀 더 골고루 읽어볼까 생각하고 있던 차에 나와는 전혀 다른 책읽기를 해 온 누군가의 독서일기가 손에 쥐어졌다.
벌써 여덟번째 독서일기를 내고 있다는 저자 장정일은 60세가 될 때까지 20여 권 넘는 독서일기를 내기 위한 꿈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읽기"가 삶의 한 방식이 되어 있는 이였다.
평생 책읽으며 살아가는 것을 업으로 하고 있는 나처럼 평생 독서발자국을 남기며 살아가는 삶을 받아들이고 있는 사람. 그의 독서는 시사적인 책들이 많아 부럽기도 했고 간간히 보이는 소설들이 내가 읽은 것들과 겹쳐 반갑기도 했다.
그간 내가 올린 서평이나 타인의 서평을 되읽으면서 서평의 중심엔 "감동"이 뭉쳐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서평읽기"를 통해 생각의 여운을 남길 수도 있음을 배워나가고 있다.
"논픽션 작가"인 다치바나 다카시의 [피가 되고 살이되는 500권, 피도 살도 안되는 100권]이나 야마무라 오사무의 [천천히 읽기를 권함]등은 그의 서평을 통해 궁금해진 책들이며, "배신에도 수준이 있다"는 단 한 줄 때문에 [신뢰와 배신의 심리학]은 꼭 읽어보려 한다.
서평 하나하나의 길이가 어느 수필상의 수상작들 길이보다 길며, 누군가의 서문처럼 의미가 깊다. 내용면에서도 분명 자신의 느낌을 이야기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아 객관적이라는 느낌을 전한다. 물론 모든 내용이 읽는 나의 생각과 일치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베른하르트 슐링크의 [더 리더]는 원작소설로 읽어 감동을 전달받았던 작품인데, 내겐 이 책이 "외설"도 "예술"로도 논하기 이전에 "인간의 존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맞지 않나라는 일기를 남기게 만든 문제작이었다.
소설을 읽었던 그 날, 늦은 밤까지 잠들지 못하며 홀로코스트의 중차대한 범죄사실에 대한 인식조차 없어 무지했던 한나가 문맹의 치욕으로 차라리 감옥을 선택했던 대목이나 자유를 목전에 두고 삶을 스스로 끊어내었던 대목은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문맹의 치욕이 죽음보다 큰 것이었을까 를 고민하게 만드는 소설 [더 리더]. 그녀의 외로움과 쓸쓸함을 고스란히 전해받았던 책이라 내겐 많은 것들을 토해내게 만들었던 소설이었는데, 그에 반해 저자는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 책의 내용을 분석해 놓아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내 것과 달라도 즐겁게 읽게 만드는 힘, 이 책은 그 힘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셔먼 영의 "책은 죽었다"라는 제목과 달리 타매체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인쇄 문화는 여전히 살아남았다. 아니 그 부산물인 책은 여전히 살아남아 오늘날도 우리에게 사랑받고 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누군가가 쓴 책을 읽고 또 다른 누군가가 써 놓은 서평을 읽으며 액자구성 속 소설의 주인공 중 하나처럼 맨 뒤에서 그들의 글읽기를 답습하고 있다. 책을 사랑하고 글을 가까이 두고 사는 삶이 자연스러운 나같은 인간에게 "읽을거리"는 언제나 반갑다. 저자처럼 나 역시 "읽기"가 삶의 방식이자 습관으로 굳어져 있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