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온다 리쿠 지음, 박수지 옮김 / 노블마인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한 집에서 태어나 이사가지 않고 줄곳 살다가 그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몇몇이나 될까. 도시의 삶은 우리를 한 곳에 머무르게 놓아두질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이사 갈때마다 이 공간에 머물렀던 전주인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다갔을까. 를 떠올려보며 사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아마 첫번째 질문의 수보다 많지도 적지도 않을 것이다. 딱 그만큼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이사를 다니면서 나 역시 단 한번도 먼저 주인에 대해 궁금증을 느낀 적이 없었다. 다만 벽지에 풍선껌 스티커가 붙어 있을 때면 "아이가 있던 집이었구나."했고 싱크대 구석에서 치우지 않은 생활 쓰레기들이 발견될 때면 "깔끔치 못한데다 뒷 사람에 대한 배려도 없는 사람이구나"했을 뿐이다.

 

하지만 나완 달리 생각해 보는 쪽이었던 작가 온다 리쿠는 그녀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여러 명의 이야기를 소설 속으로 쓸어담았다.

 

언덕 위 유령의 집엔 산 자와 죽은자가 함께 교류하며 살아가고 있다. 솜씨 좋은 목수가 좋은 자재로 공들어 수리하면서도 죽은 자의 따뜻한 대접을 받았고 심지어 부동산 중개인처럼 집을 소개시켜주는 증조할머니의 유령도 나타나곤 했다.

 

20년 전 숙모님이 소유했던 집을 구매한 작가는 낡고 살기도 불편한 집에서 살아있는 상태로 죽은 자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곧 그 풍경은 섬뜩하게 변해버린다.

 

"여기 묻었어. 당신의 숙모를..."이라는 고백과 함께.

 

 

그러면서 밝혀지는 집의 전주인들의 과거는 그리 평범한 것들이 아니었다. 감자 껍질을 벗기다가 서로 찔러죽인 자매,동네 아이들을 토막내 주인에게 먹인 여자 요리사, 서재에 머물며 아이들의 고기를 먹던 노인, 품안의 아들과 함께 쓰러져 죽은 여인, 피클처럼 담겨져 마루밑 저장고에 놓여 있던 아이들의 토막, 혼자사는 노인 집만 골라 들어가 연쇄살인을 이유없이 저질렀던 소년까지.

 

집은 어른들이 흔히 말하는 "터가 안좋아"라는 소릴 들을 정도로 흉측한 사연의 사람들의 역사를 보듬어 안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허물어지지 않고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 다음 사람의 역사를 기다린다.

 

많은 기억들이 쌓인 유령의 집은 결코 행복해 보이진 않지만 어쩐지 불행해 보이지도 않는다. 분명 혼자 사는데도 사람들로 가득 찬 느낌을 주는 언덕위의 집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람들을 구해주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알고 있어. 네가 나를 구해주었다는 걸

 

너는 있어 주었어 언제나 그곳에 있어 주었더

 

라는 말이 누군가가 아닌 집에게 하는 말처럼 들리던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누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등에 칼을 꽂으려고 기회를 엿보는 곳이지만 이곳은 거기에 두려움을 느낀 이들을 살아있지 않은 상태라도 수용하고 받아주는 공간이다.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공간인 언덕 위의 집. 핑크빛 겉표지 속에 검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어서인지 공포스럽기보다는 매혹적으로 보이는 집에 온다 리쿠는 그녀 특유의 환상을 덧입혀 고혹적인 스토리로 엮어냈다.

 

한 밤 중에 불꺼놓고 스탠드에 의지해서 혼자 읽어도 전혀 무섭지 않을 그런 이야기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