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나의 집

즐거운 나의 집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7년 11월

자신의 삶이 대중 앞에 내보여졌을때 의연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엔 가벼우면서도 자신의 이야기엔 소심해지는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소설을 통해 그들이 삶을 담아내는 작가들의 용기는 대단하게 여겨져야 된다고 본다. 그 모든 면을 감수하고 그들은 창작의 고통을 수반하며 좋은 글들을 잉태해내고 있으니까.

 

얼마전 무릎팎을 통해 알게 된 작가 공지영의 가정사는 작품 이외의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나같은 독자도 TV앞으로 당겨 앉게 만드는 괴력을 발휘하며 방영되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부터 [수도원 기행],[도가니]에 이르기까지 빠짐없이 챙겨 읽으면서도 내게 그녀는 50% 정도만 좋아지던 작가였다. 올인하며 좋아하기엔 너무 무겁기도 하고 어쩌면 많은 것들을 가진 여자처럼 보여 나 외에도 매니아 독자가 많은 거야라는 속마음으로 한발만 담근 채 그녀를 응원했었다.

 

가장 부끄러웠던 것이 바로 이 마음이었다. 무릎팎을 통해 드러난 가정사보다 그녀같은 대박작가도 단 한줄이 쓰여지지 않아 고뇌하는 고통스런 밤이 있다는 사실이 더 충격적이었고 술술 써낼 것만 같던 인기작가의 뒷편엔 처절하게 최선을 다해 써야하는 당위성을 갖고 책상앞에 앉아 쓰는 작가의 번뇌가 묻혀져 있었다. 내게 보이던 공지영과 내 상상 속의 공지영, 그리고 실제 공지영 작가 사이의 괴리감이 이토록 컸다니.....역시 사람은 상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를 잘 안다고 착각하며 사는 어리석은 동물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래서 한결 궁금해진 [즐거운 나의 집]은 첫째딸 위녕이 화자로 나서 풀어내는 이야기면서 자신을 바라보는 딸의 시선에서 같은 눈높이로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작가의 자화상처럼 쓰여진 소설이다. 아이같은 엄마. 그래서 더 용감하고 앞장서지만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엄마. 순수하지만 바람을 타고 팔랑대며 떠다니는 영혼을 지닌 엄마의 딸의 느낌을 책은 너무나 자연스레 전달하고 있다.

 

세상의 모든 딸들과 엄마의 거리. 가장 가까우면서도 가장 상처주기 쉬운 거리에서 평생을 살아가는 그 거리에 위녕과 엄마 역시 서 있다. 소설가라고 해서, 성이 다른 형제들이 있다고 해서 그 거리가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들의 축복은 엄마의 유명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엄마가 스스로 행복해지는 여자라는데 있었고, 그들이 불행은 남들과 틀리긴 하지만 다르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깨달아야한다는 점이었다. 그것 뿐이었다.

 

위녕의 말처럼 주변 사람 모두가 좋은 사람들뿐인데도 서로 상처를 받으며 살기도 한다.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사람에게 가장 상처를 남기는 동물은 여전히 사람이기에 그녀의 소설은 달콤한 듯 씁쓸한 듯 포장되어 있지만 시사하는 바는 크다. 점점 더 달라져가는 가족의 형태와 가정에 대한 진정한 정의를 다시 내리게 만드는 책인 동시에 함께 살아가고 있음에 대한 고마움을 무한히 누리도록 만들어주는 소설이었다.

 

 

"내 배 아파 낳았는데, 열 달 동안 맥주 한 잔 못 먹고 담배 피우고 싶은 거 꾹 참고 낳았는데, 게다가 너희 낳고 나서 이십 킬로도 넘게 불은 살덩이들 빼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성도 엄마 게 아니고 얼굴도 엄마게 없으니....."라는 엄마의 투정같은 세상은 여전하지만,

 

"누가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정말 돌아가기 싫지만 그래도 갈 거야. 엄마가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 한 건 너희를 낳은 거니까."라고 말해주는 엄마들이 있어 아름다운 세상이라 다행이다. 작가의 말처럼 가족이라는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명사는 "사랑"임에 동감하며 이 가족의 행복에 미소를 보태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