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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골사의 딸
에이미 탄 지음, 안정희 옮김 / 신영미디어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조이럭 클럽] 이후 오랜만에 에이미 탄의 이야기와 접해본다. 제목이 [접골사의 딸]. 대체 무슨 내용이길래 이리 생뚱맞은 제목을 붙였을까. 사실 이름이 생뚱맞아 보여 그렇지 이야기는 그녀의 장기를 벗어나지 않았다. 전작에서 엄마와 딸의 절절한 애증관계를 여실히 보여주던 것과 마찬가지로 [접골사의 딸]에서도 세대를 넘나드는 엄마와 딸의 관계가 조명된다.
중국본토에서 전족을 하거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없었던 여성시대를 살아온 할머니 세대, 그 중간 세대인 엄마, 그리고 이민세대인 딸이 등장해 [조이럭 클럽]에서처럼 삼대를 넘나들면서 그들이 이어온 질긴 생명의 뿌리를 찾아내게 만든다.
무엇이 엄마와 딸을 이토록 반목하게 만들고, 반항하게 만들며 종국에는 화해하게 만드는 것일까. 탯줄을 끊는 순간 끊어져 나간 아들들과는 달리 딸들은 그 절반가량만 떨어져 나가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이어짐으로 인해 평생을 떨어질 수 없음에 화를내고 떨어질까봐 겁을내며 서로 상처를 내는 관계가 바로 엄마와 딸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끈으로 묶인 두 사람은 부부가 아니라 모녀이기에 작품은 감동을 전달한다.
이민세대이자 대필 작가인 루스 영은 치매에 걸린 엄마를 보며 어느 말이 진실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나이, 가족관계, 과거 이력까지...자신이 알고 있던 진실은 치매에 걸린 후 엄마가 입으로 내뱉는 것들과 모두 달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엄마의 일기를 발견하게 된 루스는 한자로 가득한 책을 번역해 읽기에 이르고 평생을 숨겨온 비밀은 그렇게 밝혀진다.
1900년대 중국, 엄마의 일기장 속으로 들어가는 액자 구성 속 이야기는 프레셔스 앤티라는 유모의 손에서 자란 엄마의 이야기로 그녀는 최고급 먹을 생산해내는 집안의 딸이었다. 14살무렵 결혼을 앞두고 루링을 위해 자살해버린 프레셔스 앤티가 바로 자신의 어머니였던 리우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원수의 집안과의 혼담은 깨지고 루링은 집안에서 버려졌다. 결국 선교사의 고아원으로 들어가 선생이 되어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이민온 그녀는 새 땅에서 두번째 남편을 만나 딸 루스 영을 낳는다.
루링에게 "내가 네 어미다"라는 글을 남기고 자살한 리우신이 바로 접골사의 딸이었기에 소설의 제목은 거기에서 비롯되었고 루스 영의 뿌리도 바로 그곳에 있다.
삼대에 걸친 비밀과 고백은 루스가 치매에 걸린 엄마와 진정으로 화해하게 만드는 매개체인 동시에 딸뿐만 아니라 여성으로서도 엄마와 할머니를 이해하는 원동력이 된다. 언제나 딸에게 강한 어머니와 엄마에게 강한 딸들이 있어 서로 주고 받기가 되는 모녀 사이를 이토록 현실성 있게 그려내는 것 역시 에이미 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많은 법률들이 고쳐지고 다듬어지는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뿌리찾기를 할 때 아버지의 역사를 살핀다. 하지만 딸이라는 존재를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버지의 역사가 아니라 어머니의 역사를 살펴야함을 가르치는 것이 바로 에이미 탄의 책이 지닌 현명함이다. 그래서 언제나 감동과 공감을 받으면서 또한 깨달음을 함께 전하기에 나는 그녀의 매니아가 될 수 밖에 없는 듯 하다.
딸로서 읽게 된 소설은 씁쓸하면서도 끄덕여지는 부분이 많아 나의 모계뿌리 삼대를 되집어 보게 만들었고 그녀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내가 있음을 감사하게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