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가을부터 2010년 초여름까지 휴전선 이남의 여러지방을 여행했다는 작가는 "눈이 아프도록 세상을 들어야 보았다"고 했다. 작가의 여행이 어떤 식으로 소설에 녹아들었는지는 모르나 [내 젊은 날의 숲]은 근간 보았던 그 어떤 소설보다 묵직한 무게감으로 곁을 파고들었다. 오년동안의 직장생활을 접고 계약직 공무원으로 이직하게 된 조연주는 수목원에서 세밀화가로 살게 되었다. 독립운동가였다던 할아버지가 만주에서 돌아올때 함께 한 것은 "명예"가 아니라 "아편"이었고 군청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뇌물죄아 알선수재등으로 특가법에 의거 감옥에 가 있다. 어머니에겐 "그 인간"으로 통하는 아버지는 42910이 되어 형을 살고 있지만 구속된 후 한번도 편지를 집으로 보내지 않았고 어머니와 딸은 편지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단절. 이보다 더 가족간의 단절에 대해 짧고 명쾌하게 알려주는 문장이 또 있을까. 그래서 작년 9월에 이감되었다는 아버지의 소식을 면회가서 알게 되었고 새로 지은 교도소 인근엔 화훼단지가 있어 꽃가꾸기 노역중일 아버지. 그 아버지가 출소한 후 간병인을 붙여 어머니는 홀로 살게 만들었다. 아버지와 헤어지지도 못했지만 함께 살지도 않으면서 챙기는 어머니와의 관계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그 질긴 인연의 끈을 끊어내고 있었다. 유골마저 땅에 묻힌 것이 아니라 쌀밥에 버무려져 새의 먹이로 던져지는 모습은 쓸쓸함을 넘어선 허무함이 묻혀져 있었다. 어느날 문득 새벽에 전화를 걸어온 어머니는 자신의 상처로 칼을 만들어서 딸을 찌르려 했던 것일까.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은 이토록 비슷한 것일까 싶어진다. 아버지의 상태변화에 따라 수시로 새벽에 딸에게 전화를 걸어오는 어머니. 연주에겐 이런 어머니의 비명이 더 진저리쳐지는 것이었을까. 소리없이 누워있는 아버지의 몸뚱아리가 더 진저리쳐지는 것이었을까. 어머니에겐 "그 인간"이었던 아버지가 연주에겐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아채기 힘들었다. 그저 강하게 거부하지도 그렇다고 환영받지도 못했던 존재로 인식되어진 아버지의 삶과 수목원에서 그림을 그리는 연주의 삶이 맞닿아 제목은 [내 젊은 날의 숲]이 되었을지도 모를 소설 속에서 나는 연주가 되어 읽는 내내 우울했던 기억만이 남아 있다. 명절이라 가족에, 친적들이 벅적벅적했던 가운데 소통된 누군가의 가족사를 듣는 느낌으로 읽었던 소설이라 더 괴리감이 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