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면서 울분을 참을 수 없었던 이유는 눈앞의 범인을 놓쳐버린데 있다. 영화를 본 이들은 비슷한 느낌을 받았겠지만 조금만 더 과학적인 입증이 가능했더라면...조금만 더 증거가.....!!!라는 안타까운 느낌으로 영화는 끝나버렸다. 그때 CSI나 국립과학수사 연구소의 현재의 기술이 접목되었다면 우리는 그 범인을 잡을 수 있었을까. 콜드케이스가 되어버린 이 사건은 공소시효와 상관없이 가장 밝혀졌으면 하는 사건 중 하나다. 드라마 [싸인]이 방영되면서 부검과 증거는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그저 재미만으로 구경해도 좋겠지만 [별순검]이나 [CSI]를 보는 기분으로 보아도 드라마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국립과학수사 연구소 법의관을 중심으로 한 드라마. 이전에는 이런 드라마가 없었나. 케이블에서 이례적으로 재미나게 시청했던 [신의 퀴즈]도 있었지만 공중파에서 의사가 아닌 법의관을 소재로 한 드라마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명배우 박신양의 연기와 더불어 사건을 파헤쳐가는 그들의 모습을 보는 일은 흥미롭다. 시체의 유언을 듣는 마지막 사람들인 그들에게 시체는 생각보다 많은 비밀을 담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구분하기 쉽지 않은 죽음의 원인들을 증거와 함께 하나하나 증명해내는 일이 그들의 일이었다. [타살의 흔적]은 결코 스스로 말하지 않는 시체가 담고 있는 비밀들을 풀어나가면서 죽음의 퍼즐을 맞춰가는 현장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마이클 잭슨과 배우 최진실처럼 유명인의 사망사건에서부터 토니컷 쇼크, 외상성쇼크처럼 밝혀내기 쉽지 않은 사인들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전문지식이 없는 독자의 이해도 쉽도록 했다. 간혹 피 한 방울 없는 추락사나 자살 후 이동하는 시체, 성욕을 위해 목을 맨 사람들처럼 듣도보도 못했던 이야기를 알게 되기도 했고 12대 인종~26대 고종에 이르기까지 7명의 조선왕의 독살에 대한 역사를 배경으로한 독살 가능성에 대한 저자의 의견도 들을 수 있어 유익했다. 시반, 울혈, 청색증, 시취 등등 전문 용어에 대해 알게 되고 물중독이나 압궤 증후군,명예범죄에 대해 알게 되면서 사람이 죽음에 이르는 일은 병 말고도 참 다양하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런 다양성을 두고 우리는 아는 범위안에서만 이해하려했다니 새삼 인간이란 언제나 우물같은 지식에 갇혀 사는구나 싶어져 서글픔이 밀려오기도 했다. 법의학은 응용의학의 한분야로서 법률상 문제되는 의학적 , 과학적 사항을 연구하여 이를 해결함으로써 법운영에 도움을 주고 인권옹호에 이바지 하는 학문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단순히 멋지게만 보이고 전문적으로만 보였던 이 분야가 사실은 죽음에 이른 생의 마지막을 이해하고 배려하며 밝혀내는 직업군이라는 것을 책을 통해서 조금이나마 배우게 되었다. 아는 만큼 이해하게 된다지만 나는 책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게 되었어도 이제 막 이해하게 되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