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미터 - 너와 내가 닿을 수 없는 거리
임은정 지음 / 문화구창작동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문화구 창작동이라는 동네가 정말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라는 상상을 하며 [1미터]를 읽기 시작했다. 겉표지가 주는 알 수 없는 몽환적인 느낌과 더불어 읽기전 만져진 뒷표지의 작은 소녀의 입체적인 모습까지 잊혀지지 않은 가운데 소설은 식물인간 상태로 만난 두 남녀의 일상과 소통을 가감없이 전달하고 있었다. 

인생에는 지름길이 없었다. 딱 아픈 만큼만 그만큼만 세상을 알게 되었다. 이 진실은 찬강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강찬의 이야기이기도 했으며 소연이나 상혁, 서길자 여사, 석천, 민준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그들은 사회와는 격리된 요양원에 살면서도 그 어느 사람과의 거리와도 가까이 맞닿아 사는 사람들이기도 했다. 

처음에는 가까이 있는 죽음이 그들을 가깝게 했을까 싶었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언제올지 모를 죽음 따위가 그들의 거리를 좁혀준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가족처럼 서로를 챙기며 보살피고 있었다. 건강한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꿈에서나 꿔볼 그런 공동체의 모습이랄까. 

3개월,3일이 남았든 30년,60년이 남았든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을 사는 벤자민이 아닌 다음에야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가는 것이 똑같은 우리네 삶 속에서 그들은 죽음을 통해 진실을 먼저 꿰뚫고 있긴 했다. 죽음이 거리를 좁혀주진 않았지만 그들에게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 준 사실은 놀라웠다. 죽음이 너무도 큰 것이기에 시한부 선고를 받고 나면 사소한 것들이 시시해 진다... 는 말은 그럴법하면서도 부럽기보다는 서글퍼지게 만드는 문장이었다. 

잘나가는 pd였지만 교통사고 후 식물인간이 된 강찬은 죽는 방법을 몰라서 살고 있었던 환자였다. 그런 그가 아내에 의해 저 멀리 행복요양원에 들어오면서 자신과 소통이 되는 또 다른 환자와 한방을 쓰게 되었다. 운명인지 이름조차 비슷한 여인 찬강. 그녀는 10대때 식물인간이 되어 누워있지만 강찬을 위로할 정도로 밝은 성격의 소유자였다. 홀아버지와 남동생과 함께 사는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밝음을 잃지 않던 그녀로 인해 조금씩 변해가는 강찬. 이젠 모두가 살아야한다고 생각이 바뀌어가게 되지만 요양원 식구들은 제 시간이 조금씩 타들어가는 사람들이었다. 한 사람씩 사라지는 가운데 가장 슬픈 일은 찬강의 아비가 생활고로 인해 찬강을 포기하는 순간이었다. 


내 목소리를 듣는 유일한 사람.
그런 사람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둘 만의 비밀스러운 속삭임이 사라지고, 손 한번 잡아줄 수 없었던 연인이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도 태양은 떠오르고 있었다. 

소설의 끝은 찬강도 떠나고 강찬도 떠났다고 밝히고 있다. 
이상하게도 슬프거나 눈물이 나지 않았던 이야기는 얼마전 읽었던 책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호스피스 병동의 요리사인 그는 내 생의 마지막 저녁식사라는 책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던 죽음과 내일 앞으로 다가온 죽음의 의미가 다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전하기도 했는데, 그 책의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진 듯한 책 [1미터]는 그래서 내게 또 한 권의 의미있는 책으로 남았다. 
2010년 읽은 마지막 소설 중 한 권인 [1미터].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마음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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