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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자 ㅣ 오리하라 이치의 ○○자 시리즈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소영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공소시효 15년을 놔두고 경찰과 숨바꼭질에 들어간 여인은 도모타케 지에코.
그녀는 친구의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쫓기고 있다. 왜 그랬을까.
자신의 남편도 아닌 친구의 남편을 살해하다니....
궁금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애초에 교환살인이라는 소재는 그리 독특한 소재거리가 아니었다. 이전에도 추리소설의 영역에서 타작가들이 사용해 왔던 소재였기 때문이다. 전혀 이해관계나 교접점이 없는 타인에 대한 살인을 교환살인이라는 트릭으로 마무리 지어왔기에 이 책도 그러려니 했었다. 하지만 [도망자]의 작가는 오리하라 이치였다. 그는 반전 트릭의 명수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좀 더 지켜보기로 맘 먹고 책을 읽어나갔다.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생각보다 꽤 방대한 양이었는데, 읽어나가면서 새삼 놀라게 된 사실은 작가의 관점에서 소설을 바라볼 때 일어났다. 깨알같이 박힌 양을 작가는 얼마나 공들여 오랫동안 다듬어 왔을까 에 생각이 미쳤을 때였다. 비슷한 두께의 책들보다 훨씬 많은 양을 소화해내며 읽은 느낌을 주는 오리하라 이치의 추리소설. 마치 압축본을 풀어가며 보는 느낌을 가지게 만들고 있었다.
처음부터 포커스를 지에코에게 맞추어진 채.
살인과 범인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82년 동료 호스티스를 살해한 후 도주해서 공소시효 21일전에 극적으로 체포된 후쿠다 가즈코를 실제 모델로 한 소설이다보니 범인을 은닉하기 보다는 공소시효의 카운트다운을 세는 편이 더 긴박감을 주는 요소로 각인 시킨 것이다.
사생아로 자라 엄마에게 버려진 채 성장했다가 엄마와 함께 사는 놈팽이같은 남자의 아이를 낳게 된 지에코. 똑똑했지만 엇나가는 바람에 인생이 꼬이게된 그녀는 폭력가정의 안주인이 되어 남편의 구타를 참아내고 있었다. 비슷하게 살아사던 료코와 의기투합해서 서로의 남편을 죽여주기로(?)했으나 지에코만 성공한 채 도망다니게 되었다. 료코는 지에코의 성공으로 얻게된 보험금이라는 부수익을 발판삼아 성공하게 되었지만 여기에는 오리하라 이치만의 트릭이 존재했다.
사야마 그랜드 메종 605호에서 살해된 43세의 사야시다 히로유키는 정말 지에코가 죽인 것일까. 또 료코는 왜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것일까.
이 두 의문점이 트릭으로 작용하면서 소설은 마지막에 화살을 다시 지에코에게로 넘긴다. 공소시효는 지났지만 지에코 15년간, 아깝지 않니?하고.
재미있는 소설은 원래 술술 읽힌다. 복잡해 보이는 트릭은 추리해보고 싶게끔 만든다.
범인이 밝혀져 있는 사건에서는 또 다른 밝힐 거리를 찾아보게 한다. 이 모든 것의 총집합체로 나는 [도망자]를 추천하고 싶다. 도망자. 읽기 전부터 읽고난 후까지 한 점의 후회없이 만족스럽게 만든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