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이 닿지 않는 아이
권하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6월
평점 :
품절


어쩌면 고백이고 독백이며 웃음이고 울음이다 라는 작가의 소견이 눈에 맺힌다. 

당신과 나의 청춘은 이렇게 사랑스러웠다는데......작가가 말하는 당신은 독자를 말하는 것일까. [발이 닿지 않는 아이]는 성장소설이되 성장소설이 아닌 듯 하였다. 칙칙하고 하수구 냄새나는 세상에 삐딱하지도 바르지도 않은 시선으로 서 있는 소년이 있다. 

아빠는 강간범에 도둑놈이고 엄마는 아들을 버리고 달아나 다른 사내와 딴 살림을 차리고 산다. 몇 놈이나 바뀌었는지 알 수는 없다. 선생은 맨날 매타작에 인격적으로 제자를 구타하고 사람들은 소년을 도둑이라 부른다. 

사실 소년은 남의 것을 훔친다. 그것도 별 죄의식 없이. 하지만 전문적인 털이거나 유흥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삶을 목적으로 한 것도 아니다. 고물을 팔아 몇 푼 건지고, 때때로 도둑질도 하고 마트에서 알바도 하는 등. 소년은 넉넉하지 않지만 부양가족 없이 혼자 자립하며 살고 있었다. 물론 배고픔은 있다. 그에 비해 소년의 고물상 생계비의 라이벌인 할머니는 어린손자를 부양하고 있다.  삐딱하게 기울어진 소년의 시선도 동정과 사랑이 배여 있음을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알 수  있다. 

비록 세상은 이들에게 따뜻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적어도 남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보다는 따뜻한 심장을 데워가며 사는 이들이었다. 

작가의 시선이 좋은 까닭은 그들이 스스로를 동정하지도 비관하지도 그렇다고 허풍을 떨면서도 아닌 3자보듯 자유로우면서도 때론 쿨하게 보고 있다는 점이었는데, 감정적이기보다는 정리된 마음으로 읽어나갈 수 있어 불필요한 가슴아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도둑질을 자주 한다. 가장 간단하게 뭔가가 생기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라는 독백은 시원스럽다. 배워온 도덕적 잣대로 보면 타박받을 행동이지만 소년의 입장에서보면 옳고 그름을 배움에서 찾기보다는 생존에서 찾는 것이 더 올바르기 때문이다. 그는 미워하지 않게 된 아비와 어미도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저 자신의 오늘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오늘을 굶지않고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소년이다. 게다가 형사로부터 아비의 탈옥소식을 들었으면서도 

제법이다. 교도소를 네 번이나 갔다오더니 이젠 탈옥도 할 줄 안다.  라니.

자기 아버지가 아닌 어디 드라마에 등장하는 사람 보듯 하고 있다. 어쩌면 소년에게 보이는 모든 이들은 참견하고 싶지 않은 구경거리 정도는 아닐까. 희노애락을 잃어버린 소년의 일상에 죽어있는 할머니를 발견하고 손자를 데리고 나오는데서 일말의 희망을 발견해낸다. 마치 원빈의 영화 [아저씨]에서 아저씨가 제3자 구경하듯 삶을 살다 옆집 소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전부를 걸었던 것처럼.

그런 면에서 [발이 닿지 않는 아이]란 멋진 제목이다. 세상에 발을 대고 있지 않은 아이의 세상살이라는 소설의 내용이 함축적으로 잘 설명되어져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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