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는 심청이는 환경극복, 효의 복화, 권선징악, 신분세탁의 신데렐라형 해피엔딩의 주인공이다. 언감생심 심봉사의 딸이 왕비가 될 수 있었던 이유도 연꽃의 신분세탁이 주는 선물이었고, 뺑덕 어미의 악행을 벗어나 좋은 미래를 맞을 수 있었던 것은 효심에서 비롯된 용기 있는 행동이었으며 운명을 버리고자 했던 일이 운명을 개척하는 힘의 원동력이 된 여인이 바로 청이다. 그런 심청은 콩쥐 팥쥐와 더불어 어린 시절부터 가장 즐겨듣던 우리 구전 소설이기도 했는데, 사회성 짙은 작가 황석영의 필체를 통해 심청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가 깜짝 놀랐다. 심청이는 어디로 갔지? 평소 알던 심청이는 온데간데 없이 인당수에 빠져죽지 않고 중국의 대부호 영감의 성적 노리개가 되었다가 그 아들의 첩실이 되었다가 홍등가의 여인이 되어 늙그막에 늙어죽는 심청. 구전동화보다는 더 현실성있게 적합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알고 있던 동화가 주는 달콤함이 뒤집힌 다는 것은 사실 별로 유쾌한 일이 아니었다. [여자의 일생]에서처럼 [홍등]에서처럼 시대적 배경과 환경 탓으로 또한 여인이라는 이름하에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여인들...그들의 모습을 소설에서 발견하게 될때면 무한한 슬픔을 느끼게 된다. 사회가 무슨 이유로 이들을 이토록 가혹하게 살게 만드는 것인지...비단 소설 속에서뿐만 아니라 현실 속에서 이렇게 살아갔을 세상 어딘가의 여인들을 생각하며 울분짓게 되는 것이다. 심청은 기존에 알고 있던 이야기와는 많이 다르다. 무선 인당수에 빠지지 않고 중국으로 건너가는 것부터 다르며 열 다섯의 철모르는 나이에 여인의 인생이 시작되는 것부터도 다르다. 우리는 오늘 또 다른 심청을 만나고 있다. 작가 황석영의 필체 아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