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쓰노트]는 처음 발견했을때부터 소재면에서 놀라운 작품이었다. [트루먼쇼]는 소재의 신선함에 반해 내가 저 트루먼처럼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들게 할만큼 타인에 대한 시선에 무거움을 느껴야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둘 다 자의가 아닌 타인에 의해 조종되는 삶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쓰리]에서 가장 섬뜩했던 부분은 소설 속에 나오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옛날 노예제가 남아 있던 시절 프랑스에서는...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는 귀족에 의해 평생을 조종당하다 급기야 죽여지기까지 했던 한 소년의 운명 노트에 관한 것이었다. 어느 누구의 삶이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날조되는 것을 우리는 견딜 수 있을까. [쓰리]는 한 소매치기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범죄자와 약자의 팽팽한 신경전과 악의적인 인물이 가진 생각으로 물들어가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보여주는 좋은 소설의 예이기도 했다. 천재 소매치기 니시무라는 그물에 걸려버렸다. 애초부터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그는 이야기 속 한 소년과 동일시 된다. 외톨이에 죽어도 알아줄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편리함 때문에 선택되었다는 니시무라. 마지막 의뢰를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끝에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그의 선택은 달라졌을까. 마지막으로 던져진 피묻은 동전은 희망이었을까. 쓰리는 달콤하기 보다는 씁쓸하지만 몸에 좋은 약처럼 빠르게 흡수되어지는 소설이다. 주인공의 인격이나 캐릭터의 강렬함보다는 그의 직업이 소매치기이며, 악랄하기보다는 외로움과 동정심을 가진 인물이라는 점이 매력점으로 부각된다. 게다가 그물에 먹잇감을 올려놓고 이리저리 몰아가는 악의적인 인물의 등장은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된다. 작가 스스로가 "대표작"이라고 자신있게 말한 [쓰리]는 아주 간결하면서도 색다른 맛으로 우리를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