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좋은 친구를 마중나온 기분으로 [본격소설]에 빠져들었다. 일본판 [폭풍의 언덕]이라는 설명을 굳이 보지 않았어도 읽게 되었을 이 책은 히스클리프 같은 남자 주인공을 바라고 시작한 소설이 아니었다. 본격소설이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이 붙었다는 생각은 다 읽고 나서도 접지 못한 채 오랜만에 선 굵은 문학작품을 읽은 담백한 기분으로 2권 모두 읽기를 마쳤다. 단 반나절 사이에 두 집안과 그 사이에 얽힌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읽어버린 것은 어쩌면 미안한 일인지도 모르는 일일테지만. 농촌의 순수를 잃고 콘크리트의 나라가 되어버린 일본에 실망감을 느꼈다는 저자 미즈무라 미나에. 그녀의 생각은 남자 주인공 아즈마 다로에 고스란히 입혀져 작품 곳곳에서 그의 대사로 내뱉어진다. 다소 냉소적이고 과묵하지만 후미코에게만은 정직하게. 시작의 대부분은 이 이야기가 미즈무라 미나에 자신이 들은 이야기이며 주인공인 아즈마 다로를 보았던 어린 시절,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아 마치 진실을 모티브로 한 것처럼 꾸며놓았다. 정말 저자의 말처럼 연인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니면 이것조차 작가의 트릭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부분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고 자신이 바라본 미국과 일본, 그리고 그맘때의 사람들에 섞인 아즈마 다로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또한 다시 아즈마 다로를 떠올리게 만들 유스케와의 만남 뒤엔 유스케가 일본에서 우연히 듣게 된 성공한 이 남자의 과거사로 이야기를 옮겨간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를 바라보는 화자는 가정부 후미코다. 후미코의 시각이 가장 객관적이면서 따뜻해서였을까. 누가 화자가 가에 따라 이야기는 추할 수도, 탐미적이 될 수도, 가난한 누군가의 성공기로만 남을 수도 있었을 일이기에 후미코는 결코 가볍게 이해되어서는 안되는 인물 중 하나다. 시게미쓰가와 사이구사가, 그리고 하인 아즈마 가 사이에 얽힌 세월의 애증은 소설 두 권 속에서 일본의 근대화와 함께 맞물려 변화되고 있었다. 괴롭힘과 질투, 시기와 무시함의 관계가 표면화되고 인간보다는 계급의 문화가 일반시 되던 시절을 벗어났지만 여전히 부림의 혜택을 유지하며 살아온 노파3인방. 그 중 큰 언니인 하루에의 밉살스러움은 결국 세월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제껏 이토록 밉살스러운 노인네를 만나본 적이 없다. 미나에의 기억속 아즈마 다로는 어딘가 필사적인 스무살 청년이었다. 영어를 배우려고 필사적이었던 그가 어느새 회사 제 1의 세일즈맨이 되고 종국엔 회사의 부당한 계약갱신조항 때문에 타 회사로 스카웃 되어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녀의 기억속 남자는 언제나 스무살 청년 아즈마 다로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다른 다로의 모습을 엿볼 기회가 주어졌다. 유스케가 별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48세의 성공한 아즈마 다로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학대받는 소년 아즈마 다로에 이르기까지 [본격소설]은 완벽한 고전의 틀 안에서 인물의 일대기를 묘하게 비틀어 보여주고 있다. 영감을 준 사람. 소설을 쓰기전 사연이 소설의 분량만큼이나 길었떤 소설. 본격소설. "정말 있었던 이야기"를 꾸며낸 이야기처럼 썼다는 작가에게 아즈마 다로는 영감을 준 사람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