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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은 [프리즘]이 첫단추였다.
이어 이번달에 [우행록]을 읽으면서 탄력이 붙기 시작했고 [통곡]을 세번째로 읽었다. 세 권 정도 읽으니 그가 어떤 식으로 쓰는 작가인지 어렴풋이 알 듯 하다.
책을 여러권 읽다보면 좋은 책을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 같다. 물론 나와 코드가 맞는 책을 찾아내는 능력에 포함된 양서고르기 능력을 뜻한다. 비슷하면서 다른 이야기이지만 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읽다보면 해당작가의 글쓰는 패턴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신기하게도 그렇다.
마치 외국어에 미쳐 한 6개월쯤 공부하다보면 어느날 귀가 트이는 것처럼 책읽기도 그렇다. 누쿠이 도쿠로의 장편소설을 3권쯤 읽다보니 작가의 글쓰는 패턴이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잡은 소재나 그가 주류로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맥 등 누쿠이 도쿠로 라는 작가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말할 수 있는 특징이 몇가닥 잡혀 온다.
이야기보다 그 점들이 더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68년생인 누쿠이 도쿠로는 와세다 상학부 출신이다. 그런 그가 추리소설에 매료되어 미스터리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만든 작품은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가 세상 어디에서 누쿠이 도쿠로의 소설로 인해 소설가를 꿈꾸게 될지도 모르겠다. 펜의 힘은 이렇듯 운명도 바꿀 수 있는 것임을 작가의 변을 통해 알게 된다. 그의 소설 [통곡]은 트릭을 평행선 상에 숨겨 놓았다. 드러나 있는 반전이지만 소설을 끝까지 읽어야만 퍼즐이 다 꿰맞춰진다.
읽고 나서 소름 돋을만큼 섬뜩해진다거나 인간이 무서워진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책을 덮고나서 이 소설의 제목이 [통곡]이었다는 사실이 다시 떠올려지면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하고 무거워진다. 한 인간의 슬픔은 타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통곡 내지는 절규 같은 것이 가슴 밑바닥에 남아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연속되는 유아 유괴 살인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범인의 동기가 밝혀지면서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리게 만드는 소설의 진실은 차라리 거짓을 믿고 싶을만큼 잔인하게 느껴진다. 슬픔에 빠져 타인의 불행에 눈감은 사람이 더 나쁠까, 그렇지 않으면 슬픔에 빠진 인간을 이용해 먹는 종교지도자가 더 나쁠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할 수 없게만드는 소재가 바로 이 책에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