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간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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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끝에서 끝으로 가는 여행이라 여행이 길다. 
종착역에 이르기까지 자그마한  간이역에 자꾸만 멈춰선다. 창밖으로 보이는 소소한 풍경구경이 점차 재미있어진다. 재미가 붙어갈 무렵 기차 안에서도 내렸다 올랐다 인사하며 지나치는 승객들도 있지만 꽤 오랫동안 함께 타고가는 승객들의 얼굴이 눈에 익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여행을 떠난 것 같은 느낌으로 읽혀지는 책이 바로 미야베 미유키의 [얼간이]다. 

얼간이. 나는 이 제목에 동의할 수 없다. 소설 속 "밝히는 자"격인 헤이시로를 향한 이 단어는 그를 지칭하는 적당한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얼간이가 아니다. 그저 느린 사람일뿐이다. 생각보다 날카로우며, 통찰력이 있고, 감정적으로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는 리더로서의 능력이 갖춰진 인물이다. 

4번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비의 당주자리를 물려받아 남부 마치부교쇼에 소속된 도신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하급무사 헤이시로.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빼앗을 수 있는 시기인 에도 시대를 살면서도 그의 일상은 평화롭다. 그러던 어느날 "나가야"에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김전일이라도 있었다면 범인은 이 안에 있다~!!며 일동 정지를 외쳤겠지만 자신의 결혼을 위해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안락사 시키고자했던 오빠 다스케를 여동생 오쓰유가 우발적으로 살인한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된 채 사건은 무마된다. 이 과정에서 나이 60줄이던 "나가야"의 관리인 규베가 사라지는 일 정도가 센세이션이 되었달까. 

그리고 새로 온 관리인은 새파랗게 젊은 스물 일곱의 가키치. 주인인 소에몬의 먼 친척이라는 이 젊은이는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왠지 "나가야"의 주민들은 자꾸만 이사를 나가게 되고, 이 자연스럽지 못한 일들을 파헤치고 파헤쳐보니 꽤 여러사람들이 얽혀 있음이 발견된다. 조용히 꾸준히 그러나 냉철하게 모든 것을 조사하는 헤이시로. 

베일에 쌓인 인물인 미나토야 소에몬 일가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모든 내막이 드러나고 사건과 인물이 집결되지만 그렇다고해서 극단적인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저 물 흐르듯이, 헤이시로의 성격마냥 진행될 뿐이다. 

얼간이는 생각보다 따듯한 느낌이 전달되는 소설이었다. 아이가 없는 헤이시로가 양자 1순위인 친척의 아이 유미노스케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사건에 얽힌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한 까닭이 아닐까 싶어진다. 나쁜 일들이 일어나지만 결코 나쁜 사람을 남기지 않는 소설. 특이하게도 이 소설을 쓴 작가가 미미여사라는 점이다. 그녀는 사회성 짙은 고발성 소설을 써왔다.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며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무서운 존재이며 타인에 대한 원한 없이도 해를 입힐 수 있는 "폭발성이 잠재된 인간"들에 대해 소설로 경고해 온 작가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사건보다는 사람을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따뜻한 필체의 소설을 써내고 있었다. 놀라울 따름이다. 마치 송지나 작가가 로맨스소설을 쓴 것 같은 아이러니랄까. 

하지만 역시 미야베 미유키답다.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는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에게 결코 해를 끼치지 않는다

는 소설 속 대사는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또한 

살아도 세상에 보탬이 안 되는 사람과 차라리 죽는 게 보탬이 되는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많을 것 같으냐?

라는 질문은 화두로 남는다. 고요 속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다. 이런 면에서 역시 이 소설은 미미여사답다. 다른 듯 해도 역시 그녀의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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