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카 고타로의 상상력은 이상하다. 언제나 그랬다.
상상력....이라고 하면 흔히 판타지나 sf적인 것들을 생각하기 쉽지만 그의 상상은 다른 곳으로 뻗친다. 그래서 감탄하면서도 농락당하는 느낌이 든다. 이 근사한 생각을 왜 나는 쉽게 해내지 못했지?라는....
그는 저 멀리 별같은 천재성을 뿜어내는 작가가 아니라 우리 옆에 나란히 서서 다르게 빛나는 존재처럼 재능을 뿜어낸다. 그의 작품을 읽을때마다 나는 내 자신이 살리에르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의 작품은 그정도로 독특하다.
[사신치바]를 재미있게 읽으면서 나는 작가의 작품들에 탐닉되기 시작했다.그래서 [그래스 호퍼]를 발견했을 땐 슬며시 웃음 지어졌다. 작가만의 독특한 비틀림을 구경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그래스 호퍼]. 다소 낯설고 딱딱한 이 제목으로 이사카 고타로만의 세상보기가 시작된다. 킬러들의 세상을 보여주면서 그가 말하고자 했던 말들을 세상에 쏟아놓는다. 댐에서 물이 터져나오듯...
- 이 세상은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뉘지 않아.(룰을 정하는 건 높으신 양반들이지)
- 누군가 책임을 지고 자살하는 방법은 나름 효과가 있다
- 의심많고 소심한 자는 제 속 편하려고 끊임없이 수를 쓴다
- 상대할 가치도 없는 해충
라는 생각은 우리도 할 수 있지만 쉽게 내뱉진 못하는 말들일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는 것, 언제나 빠져나갈 양쪽의 길을 확보하고 사는 우리들에겐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용감함은 엉뚱함이 되기도 한다.
작품 속엔 여러명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아내를 죽인 남자를 쫓기 위해 그의 회사에 위장잠입하는 전직 수학선생, 15년째 사람들이 자살하도록 유도하는 자살유도 킬러로 살아온 구지라, 일가족 몰살이 특기인 꽃미남 킬러, 세미, 밀치기 전공인 아사가오 등등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이던 그들이 페이지의 진행 속도에 맞추어 퍼즐 맞추듯 짜맞추어지는 스토리 전개에도 혀를 내두를만 하지만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은 채 조화되는 맛 또한 대단하다.
그래스호퍼는 마치 비빔밥 같았다. 각자의 고유한 맛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합쳐짐으로써 조화된 맛 또한 보장되는...
이 작품 역시 이사카 고타로 다웠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이사카 고타로의 책은 어떤 책이든 작가의 이름이 브랜드 네이밍이 되고 있다. 두터운 신뢰만큼 작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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