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맥주 광고에 여러 감독들이 나와 웃음을 주고 있다. 특별히 그 맥주를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시원하게 들이키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한번 사먹어볼까?라는 구매 의욕이 샘솟기도 하고 감독들이 어색한 연기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있다.
어쨌든 그 상품은 상품을 소비자에게 인지시키는데 성공한 셈이다.
광고속 영화 감독중 김지운 감독의 책을 얼마전에 한 권 읽었다. 장르불문하고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내는 감독이지만 좀처럼 자신을 드러낸바 없던 감독에 대한 궁금증이 예전부터 있어왔기 때문에 사막에서 오아시스 찾듯 반겨졌던 책읽기였다.
감독은 생각보다 재미난 사람이었다. 진지하게만 느껴지던 박찬욱 감독, 재미나고 사람좋아 보이던 봉준호 감독, 서민적이면서도 관찰력이 뛰어다나고 생각해 왔던 류승완 감독 등등에 비해 감독적인 측면에선 별로 이렇다할 특징을 발견해내지 못하게 만들었던 한 사람이었던 김지운 감독이 이렇게 재미있는 사람일 줄은 몰랐었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이 그렇게 다양한 색깔이면서도 재미있게 다가왔나보다.
그 김지운 감독이 첫 처녀작이었던 영화 [조용한 가족]의 시나리오를 직접 썼는데 단 5일이 걸린 작품이라고 말했을 때 의자가 뒤집어질만큼 놀래버렸다. 작품을 둘째치고라도 단 5일만에 쓰여진 작품이 저럴 수가 있을까 싶어졌기 때문이다. 직접 써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이다. 고작 러닝 타임이 100여분 안밖의 시나리오나 대본집필이 얼마나 사람 속을 말리는 작업인 것인지...그런데 그는 고작 5일 안에 완성해놓고 시나리오 당선이 모자랐던지 아예 자신의 작품으로 입봉해서 감독이 되었다.
희안한 일이지만 그의 백수생활 10년을 읽는 재미는 또한 그에 맞먹었다. 감독의 재미난 일화처럼 [시나리오 이렇게 쓰면 재미있다]도 상당히 흥미로운 작법서다. 이젠 더이상 작법서를 읽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항상 새 작법서가 나오면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결과를 알지만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마냥 작법서를 꺼내 펼쳐보는 것은 고역이긴 하다. 하지만 언제나 고역을 사서 치른다.
작법서는 내게 그런 종류의 책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 책은 서점에서 몇줄 읽다가 당장 사버렸을만큼 재미있었다. 마치 성적을 업그레이드 시켜줄 쪽집게 수험서를 발견한 것처럼, 산에서 심마니가 "심봤다'를 외치며 하산하는 기분으로 나는 책을 옆구리에 끼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읽고 또 읽었다. 재미난 소설을 읽는 기분으로 신나게 몇번째 읽어내리고 있는 작법서. 이 재미가 떨어지기 전에 나는 또 읽고 내 머릿속에 암기 아닌 암기를 해 넣어야겠다고 마음먹어본다.
시중에는 많은 작법서가 있다. 하지만 이처럼 재미나게 읽을 수 있는 작법서는 몇 권 없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이 너덜너덜해질때까지 되새김질 독서를 해 볼 요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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