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친]이 발표되던 해, 나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매니아가 되어버렸다. 그간 읽었던 다른 모든 책들은 지워버리고 내 머릿속엔 온통 키친 뿐이었다. 그리고 그 계절내내 나는 키친만을 끼고 살았다. 잘때도 머리맡에 두고 잠들고, 가방에 넣어다니고, 거짓말 조금 보내면 손에 본드 붙인듯 떼질 않았다. 손때가 묻어 꼬질꼬질해질때까지 그 책은 내 사랑을 담뿍 받았다. 그렇게 내 그리움을 함께 견뎌내준 동기같은 책이 바로 키친이었고 그 작가가 요시모토 바나나였다. 티티새, 암리타 등등 발표하는 책마다 나는 매니아가 되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녀의 책들과 멀어져버렸다. 아마 뒤이은 멋진 작가들의 유혹에 사로잡혀 버렸던 것 같다. 그리고 오랜만에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을 다시 집어 든다. [데이지의 인생]이라...요시토모 나라의 삽화가 인상적이어서 집어들긴 했지만 너무나 일상적이고 밋밋한 그녀의 필체에 또 다시 빠져들었다. 퐁당-. 옴니버스식 단편모음처럼 보이는 이 글들은 사실 하나로 엮여있다. 아빠는 모른채 미혼모의 자식으로 자라다가 엄마마저 죽고 이모 부부에게서 길러진 "나"는 이젠 독립했다. 여유롭진 못하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주변 인맥도 있는 소소한 삶의 주인공인 셈이다. 그런 "나"에겐 열한살때 브라질로 이사가서 헤어지게 된 달리아라는 친구가 하나 있었는데, 기억 속 그녀는 참 별난 소녀였다. 학교도 제멋대로 다니고 마음내키는대로 편하게 살아버리는....타인과의 의사소통보다는 언제나 자신이 우선인 별난 아이 달리아. 자유의지 100%로 싱크되어 살던 그녀가 꿈 속에 보인다. 그리고 그 꿈은 어딘지 불길했다. 소설 내내 큰 사건은 없었다. 그저 살아가는 동안 툭툭 과거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인물과 관계가 소개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달리아가 죽엇다는 편지가 도착되었지만 공포스런 반전이 있다거나 신파스럽게 마무리 되지도 않는다. 그저 흘러온 물이 흘러내리듯 자연스럽게 "그냥 그랬어"라는 식으로 종결된다. 음식으로 치자면 간이 덜 되어 싱거운 소설의 맛. 하지만 그래서 우리의 일상과도 닮은 그녀의 수필같은 소설이 오늘 내겐 위로가 되고 있다. 아주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