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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의 우주 ㅣ 베틀북 입체북 1
존 패트릭 루이스 지음, 박용기 옮김, 톰 커리 그림 / 베틀북 / 2006년 10월
평점 :
절판
1564년 2월 15일 아리스토텔레스와 프톨레마이오스의 우주관을 뒤엎은 인물이 있다. 천동설이 아닌 지동설을 외친 인물. 여러 위인전에도 단골등장인물인 그는 갈릴레오다.
저울과 펌프, 컴퍼스, 온도계, 수압저울 등을 발명하고 현미경을 개선했지만 지동설이 워낙 유명하다보니 나머지의 그의 이름 옆에서 묻힌 듯 했다.
4백년 전 피사에서 태어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천장에 매달린 등이 푸코의 추처럼 흔들리는 것을 보고 신기해하던 소년이었다. 그 호기심 많은 소년은 수도원에서 학문을 연마하기 시작하여 의학을 공부하다가 물리학과 수학으로 옮겨 수료하였고 스물 다섯살에 파도바 대학교수로 임명되었다.
하지만 언제나 그의 호기심이 문제였다.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놓아두고 그는 피사의 탑에서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그의 생각엔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땅에 먼저 떨어질 것 같았는데 실험을 통해 증명법을 찾기 시작했다. 또한 빛의 속도에 관심을 가진 그 앞에 지구를 일곱바퀴 반이나 빛의 속도로 돌 수 있는 슈퍼맨이 나타났다면 속도 계산법에 박차를 가했을지도 모를일이었다.
물체를 공중에 쏘아올리면 포물선으로 떨어지는 것은 수학적으로 계산하는 방법을 요즘에는 물리시간에 쉽게 배울 수 있지만 그 시작은 갈릴레오였다고 한다. 물론 이후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다듬어 정립하였지만 말이다.
"지구가 태양 둘레를 돈다."는 말은 "그래도 지구가 돈다"라는 위인전의 단골대사처럼 갈릴레오는 대사가 있는 위인으로 기억되어 있다. 우리의 머릿속엔-.
1632년 [두 개의 우주 체계에 관한 대화]를 쓴 그는 교회를 발칵 뒤집어 놓아 종교재판에 회부되고 교회의 감시를 받아 이단의 굴레를 쓰고 살아가게 된다. 평생 죽을때까지 집밖으로 못나온 채 감금당해 있다가 시력을 잃고 1642년 1월 8일 세상을 떠났다.
1992년이 되어서야 로마 교황청이 학설은 인정하였지만 갈릴레오는 이미 고통받다가 죽어버린 뒤였다. 너무 늦은 인정이었다. 과학과 종교가 함께 할 수 없었더라도 인간이 자신의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세상에 태어나지 않았던 것이 그의 죄가 아닐 듯 싶다.
진실을 밝힌 그의 용기는 그렇게 시대 속으로 사그라들었다. 불행한 삶과 함께.